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이 재위 중 나라를 일제에 빼앗 긴 것은 1910년 한일 강제 합병으로 우리 주권을 상실한 이후다. 일본이 조선을 경제식민지화 하면서 조선말엽 피폐한 경제사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동양척식회사를 설립한 일본은 조선 물산을 본토로 옮기는 일에 혈안이 됐다.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더욱 착취의 강도는 세졌고, 조선의 젊은 남녀를 징발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광기는 극에 달했다.
착취와 수탈의 36년, 우리는 정규군이 아닌 의병의 후예들이 독립군에 자발적으로 가입, 일제에 거세게 항거했다. 위정자는 이미 일제에 굴복하고 친일 행위를 노골화 하면서 선민을 괴롭히고 약탈을 하는데 앞잡이로 나섰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나라를 되찾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어 오로지 제목숨하나 부지하면 그만인 자들이었다.
피의 값은 오로지 민중의 몫이었다. 당시는 양반, 평민과 상민으로 구분되는 신분사회 였는데 조선사회의 주류였던 양반 중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나라를 되찾는데 혼신을 다한 사람도 일부 있었지만, 자신의 몸을 던지고 값진 죽음을 선택한 무명의 순국자는 평민들이 더욱 많았다 .
해방 이후 반민특위가 구성되어 친일 행위자들을 단죄하는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듯 했으나 미군정은 남한에 단독 정부를 수립하면서 친미 성향의 이승만을 임정의 수반으로 내세웠다. 이승만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국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한 친미성향 인물로 분류되었으며 미군정과 의사소통이 원활한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은 임정을 이끌만한 정치세력을 규합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반민 특위에 의해 구속 중이던 친일 반역자들을 하수인으로 재활용하는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다. 따라서 반민특위는 강제 해산됐고 친일파를 단죄하는 것은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미군정은 대한민국의 국권을 회복시키는 차원이 아니라 점령국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남북한의 분할 점령 이었다. 북쪽에는 당시 소련군이 점령하고 있었고, 남한은 미군이 점령한 상황으로친미정권을 수립하는 것이 미군정의 최대 과제였다.
친일 세력을 청산 못한 것은 대한민국의 정치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약화시켰고 사회 전반에 부패적 고리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미성숙한 시민의식을 낳았다. 친일세력이 사회 전반에 주류로 활동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왜곡하거나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모순적인 구조의 악순환을 잉태했다. 옳치 않음을 통해 올바름을 찾으려는 구조적 모순은 역사의 왜곡으로 투영되었고 친일세력이 주류로 사회 전반에 그 영향이 미쳤다. 따라서 동족을 사지로 몰아 넣고 자기의 안위를 보장받았던 친일 앞잡이들은 우리 정치사에서 "그들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단하는" 옳지못한 선례를 남겼다.
이승만 정권은 일본 기업인이 패망과 함께 남겨두고 간, 기업자본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자유당 당원에 우선권을 주었다. 이것은 기업인과 정치인이 유착관계를 갖는 단초가 되었다. 이후 5.16혁명 후 군사정권도 이승만 정권 때 고속 성장한 대기업의 특혜 여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재벌과 정치적으로 야합을 했다. 이후 군사정권은 더 많은 특혜를 주면서 재벌을 육성했고 정치적 상생관계를 유지했다.
우리 경제가 고속 성장하여 세계 10위에 당당히 선 것은 재벌육성의 효과라고 말할지 모른다. 아이티 산업의 선두를 이끌고 있는 대한민국, 정말 놀랄만한 일이다. 불과 65년 전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극빈국 이었다. 미국정부로부터 원조받은 밀가루와 고형(固形)의 분말 우유를 먹고 살던 때와 비교하면 우리 스스로도 놀랄 일이다. 경제의 고속 성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기획경제와 지속적인 추진력의 결과물로 높이 살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재벌을 통해 정치자금을 수혈 받고 대기업의 뒤를 봐주는 정경유착 고리를 만든 것은 지난 역사의 과오다.
재벌은 언론이란 생물체에 먹이를 주면서 자기들의 생각과 뜻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먹이의 사슬은 매체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따라서 대중들은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정보들을 제공받고 자신이 알아야 할 권리마져 도둑 맞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국회의원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이 누구를 위해 일 해야하는가는 국회의원 당선과 함께 다음 선거를 위해 달리는 경주마와 같이 돈이란 목표를 향해 뛴다. 업무중 얻은 정보를 이용하기도하고 재벌의 비리를 캐어 이를 이용 겁박하기도 한다. 또 이권 개입을 통해 거간비를 챙기기도 한다.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은 재벌의 구미에 맞게 조정하면서 후원금을 챙기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민중이 철저히 소외된다는 사실이다. 독재정권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반면에 민주사회에서 권력은 돈(錢)에서 나온다. 재벌은 벌어들인 돈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과 치열한 싸움을 한다. 최고의 변호사를 이용하고 최고의 회계사를 통해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 한다. 재벌의 세습 과정에서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결국 정부는 조세저항을 못하는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털어 간다. 서민에게는 사전 통보만으로 쉽게 원하는 만큼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재벌은 끊임 없이 부를 쫒고, 국고는 서민의 지갑을 털어 채운다. 임란이후 재정이 바닥나게되자 관청은 서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부세(賦稅)를 부가했다. 서민들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부세를 피해 산으로 숨어들어 화전을 일구고 살았고, 일부는 유민으로 팔도를 떠돌아야 했다.
특히 요즘처럼 사무 자동화, 생산설비의 Robot화로 노동시장의 규모가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에서 청년 실업자는 증가하고 있다. 생산설비의 자동화가 확대되면서 노동현장에서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잉여노동 인력의 감원은 꾸준히 발생되고 있다. 청년들은 경제활동의 불안정으로 결혼시기를 늦추거나 출산을 기피한다. 그 결과 싱글족과 딩크족이 점점 늘고 있다.
서민경제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부의 재분배가 강제될 수 있어야 한다. 서민의 유리지갑을 털리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부의 편중은 경제의 선 순환 구조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소비는 위축되고 경기는 얼어붙게 된다. 또한 경제구조도 점점 다양성을 잃게된다. 규모와 양에서 중소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카네기, 록펠러, 빌게이츠 등은 부를 나누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우리나라에도 경주 최씨가 대를이어 부를 나눈 것으로 유명하다. 돈은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써야한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돈은 버는과정보다 소비의 당위성을 말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의 말씀 중에 손부익빈(損富益貧)이란 말이 있다. 부자의 곡간을 헐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말이다.
순자는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 엎기도 한다."고했다. 경제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약어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말인데 어디 잘사는 사람만 배불리는 것을 경제라 할 수 있는가? 경제란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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