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강의

도올 김용옥 서양철학사 26강

해암 송구호 2021. 12. 8. 18:01

THESE : 플라톤의 이데아론

 

민주제도(Democracy) :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희랍어로 민중 선동, 즉 선동정치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던 것이다. 지금도 미국 사회에서 "배심원제도"가 운영되고 있는데 법률을 전공하지 않은 시민의 참여로 판결에 영향을 끼치는 미국 헌법(American Constitution)의 불안정성은 논쟁거리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판결한 배심원들 역시 군중의 일원일 뿐이다. 강희대제처럼 선군이 통치를 할 수 있다면 군주 정치가 국가를 부강하게 할 수 있지만 가끔씩 출현하는 혼군(昏君)의 타락을 막기 위해 차선책으로 도입한 것이 민주주의제도로 통치자를 선거를 통해 뽑고,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입법, 사법, 행정 등 권력을 분할하는 제도다. 서양엔 삼권분립이라고 명시된 법은 없다. 다만 권력분립(Separation of power)이라고 해서 권력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것을 막으려는데 목적이 있다. 분립이란 Check & Balance(견제와 균형)이다. 몽테스키는 입법권, 집행권, 사법권의 독립을 주장했다. 오늘날처럼 행정기구가 복잡하고, 파워가 없을 땐 법을 가지고 국가를 보는데 만드는 사람, 해석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이 있다. 사법권의 핵심은 사법부의 독립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권력에 종속돼 있다. 따라서 사법권이 독립된 게 아니다. 

 

철인정치(哲人政治) :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정치는 민주정치보다 과거 군주제에 가깝다. 군주제도 때도 왕이 전권을 쥐고 휘두른 게 아니라 군신들의 뜻을 수렴해서 대의를 쫓으려 했다. Check & Balance가 왕권시대에도 엄존했었다. 플라톤은 어리석은 다수의 의견보다 지혜로운 현자들이 통치해야 나라가 풍요로울 수 있다고 봤다. 모범적 정의(justic&dike)는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능력을 마음껏 발현해 전체 국가와 조화(harmony)를 이루는 상태를 말한다. 

 

이상국가 : 스파르타가 추구한 강한 국가 만들기 계획엔 아이가 7세가 되면 남, 여 구분 없이 발거 벗겨서 체력훈련을 시키고 자라서 성인이 됐을 때 건강한 아이를 임신할 최적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끼리 짝을 맺어 아이를 갖도록 했는데

만약 태아가 장애가 있거나 유약한 아이는 도태시켰다. 이러한 이상국가에 대한 환상은 히틀러에게로 이어져 순혈(純血)

의 아리 안인을 퍼트리려는 "레벤스보른 실험"을 제2차 세계대전 중 은밀히 진행했다. 

 

플라톤의  Idealism :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감관의 대상이고 이데아가 아니다. 천체를 바라볼 때 하늘은 아름답다. 연말에 우리집 감나무에 보름달이 걸려 있는 것을 보면서 맑고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이중섭의 달 그림이 있는데 역시 그런 느낌이 드는 걸로 볼 때 아마 겨울에 그렸을 확률이 높다. 여름 달은 그렇지 않다. 달무리가 져서 뿌였다. 이데아는 천체가 이상적인 법칙에 의해 오차 없이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한 채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천체운행을 발견했던 초기엔 태양을 중심으로 둥근 원을 그리며 돈다고 했다가 케플러라는 과학자가 타원형을 그리며 돈다는 주장을 해서 그게 정설로 받아들여진 상태다. 우주는 다양한 별들이 일정한 비례와 수학적 법칙에 의해 완벽히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언제 궤도를 벗어날지 모른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플라톤의 우주에 대한 이데아는 영혼이 돌아갈 본향(本鄕)이란 정신세계, 천상(天上)을 의미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우개는 본향에 존재하는 정품의 Copy본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모든 일반명사는 플라톤 철학에서 보편자(普遍者)로 본다. 아버지, 여자, 나무 등 일반 명사인 보편자는 천상에 진짜가 있고 이 땅에 있는 것은 모사품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는 본향에 살았었기 때문에 그때 추억(追憶)을 회상(回想)하는 것이고 지우개를 만들더라도 그때 천상에서 봤던 이상적인 지우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설이다. 의자의 경우도 이상적인 의자는 하늘에 있고, 현실 속에 수많은 의자들이 그것을 얼마만큼 분유(分有)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꽃이 있나? 플라톤의 주장은 틀렸다. 제기되지 말았어야 할 문제로 서양철학은 이천 년동안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데아는 감관의 인지 대상이 아니다. 불완전한(imperfect) 감관으로 보이는 것은 각기 다르고 개별자의 세계로 이상적이지 않다. 고양이의 경우 집집마다 다 다른데 우리가 합의하는 고양이의 이상적 관념이 있다. 즉 ideal cat가 있고 individual cat가 각기 다른 감관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ideal cat는 우리에게 있어서 예지(叡智)의 대상이다. 이게 진정한 지식의 대상이라고 했다. 예지를 가지고 있는 자는 idea를 바라보지 현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감관이라는 것은 육체에 속하는 것이고 여기서 육체(肉體)와 영혼(靈魂)의 분리가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심판 : 소크라테스의 재판 과정을 보면 소크라테스가 누누히 강조하는 게 세상은 법에 의해서 돌아간다.는 말이다. 몽테스키의 3권 분립 중 "법의 정신"에 보면 물질계를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 그 법칙 없인 물질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 세상도 법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평등을 보장하는 실정법이 어느 때 만들어졌든지 간에 관계없이 그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평등을 지향하고자 하는 인간계의 자연스러운 법은 존재했다. 실정법의 밑바닥엔 자연법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소위 말해서 영혼에 독자성이라는 게 있고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까지 감옥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영혼은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 이데아의 세계로 갈 것이기 때문에 굳이 탈옥해서 구차하게 다른 속세로 가서 고생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강했다. 소크라테스는 성인이 아니다. 그의 주장엔 종교의 독단이 있는 것이다. 만약 "영혼불멸"을 믿지 않았다면 당연히 감옥을 도망갔을 것이다. 판결을 내린 재판장이나 배심원 모두 그가 도망가길 원했다고 한다. 인기 있는 사람이 죽으면 그 여파가 두렵기 때문에 탈옥하길 내심 바랐지만 그는 감옥을 떠나지 않았다. 뒷산 하나만 넘으면 되는데 그는 산을 넘어도 고생할 게 뻔하다며 독배를 들었고, 기꺼이 죽음을 맞았다.

 

소크라테스의 천상에 대한 확신 : 우선 나는 선하고 지혜로운 신에게로 간다는 것을 확신한다. 내가 죽은 뒤에 남는 사람들보다 더 선한,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로 간다고 확신한다. 나는 죽은자들을 위한 무엇, 약한 자들보다 선한 자들을 위한 훨씬 더 나은 선한 희망을 품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라는 것을 육체와 영혼이 분리(分離)하는 현상(現象)이라고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는 실체와 현상, 이상과 감각 대상, 이성과 감각, 지각, 영혼과 육체를 구분하는 걸 철학이라고 했다. 오르페이즘에도 소크라테스 사상의 천지론이 있다. 영혼은 하늘에 속하고, 육체는 땅에 속한다고 믿었다. 이런 사상에서 나오는 이원론은 모든 도덕주의가 육체적 향락과 쾌락을 금하는 금욕주의로 간다. 서양사상의 핵심인데 동양사상엔 이원론이 없기 때문에 육체적인 쾌락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소사과욕(少私寡欲)이라 해서 육적인 욕망을 스스로 조절하라고 했는데 서양은 그걸 금하도록 했다. 중세기 기독교와 결합하면서 더 타락(墮落)하게 되는데 플라톤은 육체적 탐욕을 구하지 않으므로 영혼의 순결함을 보장받아 이데아를 본다는 주장이다. 

 

금욕주의 : 금욕주의란 게 이상한 것이다. 인간계에선 불가능한 게 아닌가? 밥 안 먹고, 성관계없이 살 수 있나? 동양에선 단련, 수련을 통해 정도를 지키려 하는데 반해 서양은 육체를 저주하고, 부정하며 영혼을 긍정하는 이원론적으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와 영혼을 하나로 융합되는 삶을 살려고 하는데 서양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은 살면서 심심하면 견디기 어렵다. 사는 재미가 없다. 고독이란 문제가 견디기 힘들다. 인간도 여타 동물들처럼 군집생활을 해온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쾌락을 좇게 되는데 맹자가 말하는 식색(食色)의 문제다. 맛있는 음식, 또 예쁜 여인에 끌리는 마음이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한다. 아무리 좋은 음악을 듣는다고 해도 마음에 맞는 여자에게 끌리는 것보다 못하다. 또 서로 밀고 당기는 심리전도 재미를 더하게 한다. 여기에서 시와 문학이 생겨나고 문사철(文史哲)이 꽃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보다 멋있게 연출해줄 수 있는 게 뭐냐? 돈이다. 중국 공산당의 부패를 보면 이런 문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차를 타도 남이 안 타는 페라리, 포르쉐 등 최고급 차를 타고, 남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곳에 가서 유락(遊樂)을 할 수 있는 것은 돈이다. 몇 시간 만에 개인 전용기를 타고 멋진 하와이나 푸껫섬에 가기도 한다. 

 

정치가의 모델 :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이란 것이 고귀한 영혼을 갖게 되고 육체적인, 감각적인 도그마(dogma)를 벗어나서 진정한 진리를 바라보게 되면 우주를 바라봐도 그냥 우주가 보이는 게 아니라 이데아적인 법칙의 세계가 보인다. 영혼의 세계, 그것이 아마 플라톤에게는 철학자에 경지, 철인의 경지, 그러한 이데아로 단련된 사람만이 옳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조적 삶은 운동장에서 운동선수가 뛰는 것은 최하위의 삶이고, 그 밑에서 장사하는 장사꾼은 좀 더 났고, 관람석에서 관람하는 사람, 관조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위대한 삶이다. 이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인데 그러한 사상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인간은 기아(飢餓)만 면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경쟁을 통한 우열 다툼보다 현실에 만족하려는 데서 기인(起因)된 것같다. 중국의 경우 개혁개방 이후 빈부의 차이가 벌어지면서 부패가 싹텄다. 부패 척결에 앞장섰던 시진핑은 소박한 삶에 익숙한 사람이라 부패가 이해가 안 됐을 수 있다. 권력을 잡으면 합리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공무원은 청렴(淸廉)해야 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 청렴하려면 학문을 익혀야 한다.

 

깨달음에서 오는 쾌락 : 오르가슴(orgasme)은 인간이 쾌락의 정점에서 느끼는 현상으로 주로 남녀 간 교합에서 이런 현상을 경험한다. 그외에도 마라톤 선수가 달리면서, 교수형을 당할 때 사형수가 숨이 끊어지기 전 찰나(刹那) 등에서도 동일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더불어 학문도 배움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쾌락을 느끼게 된다. 유교사회에서 선비들이 타락하지 않았던 이유는 학문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유교이념이든 공산 이념이든 이데아적 그 무엇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타락한 영혼의 유랑 : 플라톤 사상에서 "영혼불멸설"이라고 하는 것은 이상세계를  투사(投射)하는 예지(叡智), 지혜(智慧)를 지녀야 가능한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육체적 욕망을 추구해 더럽혀진 영혼은 성품에 따라 무덤가를 떠도는 영혼이 되거나 나귀, 이리, 매와 같은 동물의 육체로 들어가게 된다. 철학자는 아니지만 덕성을 갖춘 자는 말벌이나 개미, 또는 군집생활을 하거나 군거 생활을 하는 다른 동물로 태어나게 된다. 윤회사상이다. 진정한 철학자만이 신들과 합류한다. 그래서 육욕(肉慾)을 멀리하는 금욕생활이 통념화됐는데 문제는 이러한 삶을 실천했는데도 불구하고 인류사에 엄청난 죄악을 범한 사례가 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의 변태적인 성생활은 개인의 일탈행위로 치부할 될 수 있는 문제였다. 다만 홀로코스트(holocaust)라는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

로마의 역대 교황들은 쾌락을 추구하진 않았어도 권력에 집착해서 죄악을 저지른 게 부지기 수다. 십자군 원정과 이교도 학살, 마녀사냥 등은 차마 입에 올리기 조차 민망한 일이다. 지성(intelligence)과 감성(sensation)으로 나누는 이원주의는  근원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육체 타락과 영혼의 불멸 그리고 이데아의 세계까지, 더나아가 칸트의 감성에서 이성 비판에 이르기까지 서양사상은 현실세계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인간애(人間愛)의 회복(回復) : 서양의 이분법(dichotomy)적 논리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동양사상이 우수한 인재를 만들어낸 건 아니다. 다만 동양적 사유를 통해 서양에서 했던 오류를 줄이고 전체를 융화(融和)롭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慧眼)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플라톤 사상이 기독교사상과 결합해서 기독교 사상을 이룬 게 아니라 기독교 사상과 플라톤 사상은 희랍과 유대라는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 서로 근동(近洞)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상이나 문화적 흐름이 하나의 축(axis)에서 쉽게 이뤄졌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도자 수준이 나날이 저하되고 있다. 제도적으로 개선할 방법이 없을까? 우리의 리더를 길러낼 방법을 찾아 우리 스스로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