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강의

도올 김용옥 서양철학사 24강

해암 송구호 2021. 12. 7. 14:13

THESE : 플라톤의 듀얼 리즘, 윤회사상

 

플라톤의 유전(流轉) : 플라톤은 아테네 상층부에 속했던 귀족 출신이다. 참주 30인 중 2명이 그의 혈족에 속해있을 정도로 유족(有足)한 집안에서 태어나 청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민주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존경했던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목격한 후 정치에 뜻을 접고 철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아테네에서 무신론자는 우리가 과거 공산주의에 대적하는 반공이념과 너무 닮았었다. 스승이 죽고 난 후 회의감(懷疑感)에 빠진 플라톤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이집트 등으로 떠돌았다. 그의 사상 Idea론의 배경엔 이집트의 기하학적 사유, 종교적 사유가 녹아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후에 시라쿠스 섬의 독재자 디오니시우스 1세의 통치 형태를 목격하게 되는데, 그의 처남 디온(Dion)의 훌륭한 인품에 반하게 된다. 디온은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지만 참주가 죽고 난 후 디오니시우스 2세에게 쫓겨났다. 디오니시우스 2세는 플라톤을 옆에 두려 했는데 플라톤은 우선 디온을 데려오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시라쿠스 섬을 떠나려 했는데 못 가게 해서 도망을 한 것이 67세 때였다. 그 이후 플라톤은 활발한 학문 활동을 했다. 플라톤의 국가론 1편은 비교적 일찍 나온 반면 2편에서 10편까지는 나중에 나왔다. 플라톤 인생도 공자나 맹자처럼 정치적 이념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현실적으로 박해(迫害)도 많이 받았고, 공자가 채나라에 갇혀 고생하듯 시라쿠스 섬에 억류되기도 했다. 플라톤은 개혁론자다. 개혁의 극단주의가 관념론으로 표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은 플라톤 사상의 정수를 아주 쉽게 정의해 보려 한다. 

 

플라톤의 사상 : Platonic idealism, platonic realism을 관념 실재론이라고 한다. idea는 시간, 공간이란 감옥에서 벗어나 있는 intangible 한 상태를 말한다. 감각, 감관(오관)은 관념이 아니다. 관념이란 항상 있어야 하는 always is(항상성) 상태여야 한다. 일례로 여기에 안경이 있다. 안경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한다. 또 오래되면 모양, 색, 형질 등이 변화한다. 변화는 시공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시공의 모든 사물은 실재(實在)하는 것이 아니다. 실재는 ontology(형이상학)한 상태, 다시 말해 시공을 벗어나 있는 것을 말한다. 플라톤의 관념 실재론이란 것은 물을 H2O로 보는 사람에게 H2O는 영원하다.라는 게 황당하긴 한데 물이란 고체, 액체, 기체 등으로 모양이 변하고 수증기가 되어 증발하기도 한다. 이것은 실재하는 게 아니다. 이런 발상이라고 보면 된다. 동양에서 물은 마시는 물이고 H2O는 비실재적인 물을 분석하는 분석 틀로 본다. 희랍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이집트 여행을 통해 피라밋을 보고, 물이 4 ~5m 범람(氾濫)하는데 기하학적으로 변화에 대처하는 걸 보고, 불변에 대한 사유를 했다. 감관이 아닌 Intangible 한 것이 느낄 수 있는 것, 이것이 nous(정신)다. 인간이 위대할 수 있는 것은 정신(nous)이 있기 때문이다. 누스라는 건 변화하는 시간, 공간의 모든 것과 관계없이 만질 수도 없고, 영원한 그 무엇을 우리는 사유(思惟)할 수 있는 것이다. 

 중동계열, 서구 문명에서는 죄의 근원을 인간의 욕망으로 본다. 이 욕망의 근원은 인간의 감각, 감관으로 보는 것이다. 이 감관에 의한 자극이 인간을 타락(墮落)시킨다는 것이다. 예쁜 여자를 보고 성욕을 느끼는데서 죄가 싹튼다고 봤다. 여자를 겁탈하거나 추행을 하는 행동으로 갈경우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상상하거나 흠상(欽賞)만 할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다음 단계는 그 여자의 영혼을 사랑하는 경우다. 플라토닉 러브다. 이세상 모든 시공 속의 감관은 저급하다고 봤다. 만질 수 있는 tangible 한 세계와 만질 수 없는 intangible 한 세계로 이원화시켰다. 그리고 만질 수 없는 세계를 관념, 형상, 이데아로 보았고 반면 만질 수 있는 세계를 물질의 세계, 욕정의 세계, 죄악의 세계로 봤다. 선의 가능성은 영혼(靈魂)에 있는 것이다. 그게 이데아고 인간의 정신 속에 있다. 정신으로 구성된 이상적인 세계, 플라톤의 이데아는 뚜렷하게 나뉜다.

코스모스 호라토스(cosmos horatos)는 tangible(감각적인, 시공적인) 한 상태 즉 헤라클레이토스의 flux(유동성)와 맥을 같이하는 반면 코스모스 노에토스(cosmos noetos)는 intangible(관념, 개념, 초시 공적) 한 상태 즉 파르메니데스의 beeing(있음)과 일맥상통한다. 서양사상은 이렇듯 확고한 이원론적이다. 

플라톤 철학은 서양에서 기독교와 잘맞아 떨어진다. 플라톤의 관념론은 희랍에서 시작됐고, 유대 평야에서 유대교의 교리를 바울(paul)이 융합(融合)시켜 기독교를 탄생시켰다. 플라톤과 예수가 잘 맞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한 문화권에서 같은 사유를 했다고 봐야 한다. 이집트 문명까지 한 문명, 한 패러다임에서 나온 것이다. 아름다운 여자를 두고 성욕을 느끼는 것과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여자의 영혼을 사랑하는 걸 삼분법으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여자의 영혼을 나눌 수 있다면 깊은 관계(關係)로 발전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이게 분리되는 게 아닌데 중동사람들은 유독 이것을 분리시켰다. 이것이 서구 중세시대로 이어졌고 결국 플라톤 사상이 중세를 지배한 것이다. 그 후 르네상스 시대를 맞으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더 우세하게 되었다. 중세기는 플라톤이 먹고, 근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먹었다고 보면 된다. 내가 존경하는 하이트 헤드(Alfred North White Head1861~1947)까지도 삐딱하게 보면 양쪽을 반반 섞어놓은 것과 같다. 1929년 과정 철학(process & reality)을 저술한 서양철학의 최고봉인 하이트 헤드도 희랍철학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플라톤에 있어서나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이분법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

헤겔의 변증법 속엔 플라톤의 사상이 들어있다. 완전한 선은 이데아 속에서 가능하다. 플라톤에서 모든 존재는 존재로서 그냥 있는 게 아니라 그 존재의 이데아를 구하기 위함이다. 목적을 갖게 된다. 기독교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은 자기의 가치를 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목적은 beeing(있음)이다. 나의 존재로서 그 속에 내 인생의 목적이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목적을 목적을 만드는 것이다. 플라톤의 듀얼리림이 낳은 본질적 문제가 종교 사상이 된다. 

 

데미우르고스(Demiurgos) : 물질적 세계를 창조한 신을 말한다. 데미우르고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독교의 창조론과 달리 존재하고 있던 질료를 이용해 세상과 인간을 창조했다고 한다. 다만 영혼만이 데미우르고스에 의해 직접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여겼다. 데미우르고스는 인민을 뜻하는 데미 오스와 일을 뜻하는 오르곤의 합성어다. 한자로는 제작자란 뜻을 갖고 있다. 플라톤에겐 창조란 개념이 없다. 카오스적인 matter를 혼돈 속에서 cosmos로 만들어내는 장인이라고 했다. 인간의 몸은 영혼(靈魂)을 닮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서양철학의 근본은 신학과 윤리학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가 끊임없이 정신(nous)적인 것을 따라가는 것이다. 나의 존재 속에 하나님이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에 "말씀이 내 몸속에 들어오다."란 말과 같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윤회사상이다. 

 

윤회사상(輪廻思想) : 윤회사상은 피타고라스 때 이미 나타난 것이고 윤회사상이 있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하는 영혼이 시공에 갖혀있다는 생각이 인간의 존재를 규정한다. 피타고라스의 윤회사상은 결국 동방적인 사유다. 윤회사상은 어떤 의미에선 서양철학의 근본이 인도에서 유래됐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 인도의 윤회사상, 이집트의 영혼불멸 사상 등 영혼의 독자성을 부여하면서 육체는 형편없는 것으로 타락(墮落)해버렸다. 인간은 결국 살아있는 동안 선에 도달하려고 노력하지만 궁극에 도달하지 못하고, 육체의 옷을 벗은 영혼이 시공을 벗어나 윤회 세계 속에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보살 행위 나 죽어서 선업을 이룬다는 것은 나중에 칸트 사상의 핵심이 된다. 윤회사상이 없인 칸트 사상이 안 나온다. 칸트는 그런 표현을 "요청"이란 합리적인 말로 바꿨다. 인간은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신의 세계속에서 영혼 불멸하기 때문에 너는 죽어서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 이게 칸트 사상의 도덕주의의 근원이다. 그 사상은 플라톤 이즘에 들어있다. 윤회사상이 핵심이다. 그런데 서양철학에선 이 부분을 명료하게 밝히지 않는다. 서양철학은 동방 철학의 아류(亞流)다. 그걸 명료하게 표현한 게 플라톤이다. 그걸 방대하게 포장했지만 플라톤의 핵심은 "관념실제론" 하나일 수밖에 없다. 윤리학에서도 그것은 동일하다. 인간은 멤버십 카드가 두 개다. 시공내 하나, 천상에 또 하나가 있다. 인간 존재라는 게 양면성 sensible & super sensible 세계가 각각 존재한다. 는 건데 동양사상에서 보면 유치한 이야기다. 플라톤의 인식론에서 모든 것이 이데아를 어떻게 인지하나 이데아 세계에서 왔기 때문에 그 영혼은 원래 수학을 다 알고 회상(回想)한다는 것이다. 족보(族譜)가 몸속에 있는 게 아니고 플라톤의 듀얼 리즘 속에 있다고 한 하이트헤드의 말이 너무나 정곡(正鵠)을 찌르는 말이다. 서양철학은 플라토니즘의 각주(脚註)다. 서양철학의 본질은 플라톤의 듀얼리즘, 리얼리즘과 아이디얼리즘이다. 이것을 통해 이성의 우위를 확보했고 이성의 위위가 과학의 기초를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