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서양철학사 22강
THESE : 플라톤의 이상 국가, 동굴의 비유
플라톤(BC 428 ~ 348) : 플라톤은 철학의 시조새(祖宗)라고 말할 수 있다. 서양철학사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두 사람에 의해 서양철학사의 대세가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을 보편적 사유라고 말하지만 한 인간의 생각이 전 인류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너무나도 편협된 채 철학의 주된 논리로 사용돼 왔다. 플라톤은 내가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사상가다. 책을 보면 명료(明瞭) 하지 않다. 그 사람의 논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상 국가론에 대한 번역(飜譯) 중 정체(政體)를 어디서는 Republic으로 하는 데 리퍼블릭커니즘(Republicanism)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의 이상국 가는 관념적인 국가다. 유치한 구상인데 오늘날 서구 문명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철학이 얼마나 편협한(偏狹) 사유체계에 머물러 있는 지 알 수 있다.
우리 동양을 보면 중국, 동아시아 문명권이라는 것은 공자, 맹자의 생각에 전체가 갇혀있다는 사실을 보면 철학이란 것에 보편성이라는 게 가능한 것인가?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직 철학이 제기하는 질문만 보편적이고, 거기에 대한 대답이라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보편성(普遍性)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플라톤이 13세기 이전까지 서양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플라토니즘이 기독교라는 종교와 결합해서 "중세기적 사유의 대세"를 형성했고 그 뒤로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이 이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이 조금 강화되서 내려왔지만 아리스토텔레스도 사실상 쓸만한 게 없다. 서양에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존중하고 있다. 그 둘 중심으로 생각한다.
플라톤은 아테네 귀족 출신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뼈대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를 따라다니면서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공자처럼 유랑(流浪)을 했고 정치실험을 시도했던 사람이다. 키레나, 에집트, 소아시아, 아테네, 이태리, 시실리아, 디오니소스 폭군과 관계를 맺고 나중에 아테네 와서 아카데미를 운영하다 다시 디오니시우스 2세 때 자기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을까 하고 갔는데 깜량이 아니었다. 맹자가 양양의 아들을 보고 실망한 채 제나라로 돌아왔듯이 그는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80세에 죽었다. 플라톤도 자기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유랑했던 사람이고 그 과정에서 "아카데미아"라는 플라톤의 학원을 만들어서 제자들을 배출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 플라톤에게 젊은 날 가장 인상적인 사건은 자기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다. 스승은 훌륭한 인물이었는데 죽은 이유가 말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 타령을 하는 바람에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플라톤의 사유에서 최악의 정치체제였던 셈이다. 누구나 자기의 견해를 밝히고, 매사에 투표로 결정하는 게 옳으냐? 위대한 지도자가 국가를 완벽하게 콘트롤하면서 가야 되는 게 아니냐 하는 물음이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겐 신화적으로 멀리 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에 대한 환상이 있는데 사실은 그 당시 진지하게 젊은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줬던 사람인 것 같다. "인생에서 행복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우주론적 철학이 윤리적 관심으로 옮아갔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 : 플라톤만 해도 철학적 관심과 정치적 관심이 구분되지 않았던 사상가다. "어떻게 이상 사회를 건설할 것인가?" 하는 정치적 관심이 있었다. 플라톤을 인식론적으로만 보고 있지만 이 사람의 진정한 목적은 어떻게 하면 이상 국가를 만들 수 있느냐? 그 이상 국가를 만든다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이상 국가론에 가면 이상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지도자를 어떻게 교육할 수 있느냐? 의 문제로 갈 수밖에 없다. 사실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가 이상적 통치 그룹에 대한 플라톤의 생각을 주창하는 내면엔 파르메니데스의 사고가 있는데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대한 인식이 있고 이념이 변하지 않고 가장 보편적이고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진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이상국가는 변화가 최소한이고 정적(靜的)인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이상적인 사회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 주의론이 나온 것이다. 플라톤에게 관념론은 파르메니데스적인 인식론자다. 감관에 의해서 세계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담긴 인식을 보면 헤라클레이토스 주장에 부정적이고, 파르메니데스의 감관에 의거하지 않는 불변의 세계, 영원한 세계를 지향하며 인재를 교육하는데, 심신을 온전히 하려면 Music & gymnastic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플라톤의 주장 : 첫째 ; 호머와 헷시우드 작품을 읽어선 안 된다. 신들을 악하게 묘사해서 덕성을 함양할 수 없다. 둘째 ; 그들의 작품 속엔 독자들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는 내용이 많다. 셋째 ; 큰소리로 웃으면 안 되는데 그들의 작품엔 축복되지 않은 신들의 억지할 수 없는 웃음이 많다. 넷째 ; 호메로스의 작품 속엔 부유한 축제를 찬양하는 시구와 신들의 정욕을 찬양하는 시구가 인간의 절제를 방해한다. 플라톤은 엄숙, 예절 및 용기가 철저한 절제를 바탕으로 한다고 했다. 음악도 Lydian & ionian 식 음악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리디안식은 계면조(슬픈감정), 이오니아식은 긴장을 풀어주는 화성인데 반해 도리아식은 단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프리지안(phrygian)식은 절제, 단순, 조화로움을 표현하기 때문에 사용 가능하다고 했다. 생선과 육류는 구운 요리가 아니면 먹지 말아야 하고 양념을 쳐서 먹어도 안 되고, 사탕, 과자도 먹어선 안 된다. 플라톤의 섭생법을 따르면 의사가 필요 없다. 인간을 국가가 통제를 통해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못 보게 하고, 들어선 안 될 것은 못 듣게 제어하는 게 플라톤의 이상국 가다. 인류에겐 플라톤의 이상 국가론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스파르타가 실천하고 있었다. 플라톤은 이 것을 모델로 해서 플라톤의 아이디얼리즘, 이상주의적인 철학이 가미돼서 이런 발상이 나왔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오늘날까지도 서구에 최고의 고전적인 것처럼 여겨지는데 사실은 무용하다. 하등에 존경해야 할 이유가 없는 문헌이고 여기에 나오는 철학적 관점이란 게 동굴의 비유다.
동굴의 비유 : 동굴 속에 죄수들은 뒤를 돌아볼 수 없게 손발이 묶인 상태로 앞만 바라볼 수 있다. 그들의 머리위로 길이 나있는데 그 위로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 또 길이 난 곳 바로 뒤에는 모닥불을 피워 놓아 그 불빛이 길을 걷는 사람을 비추고, 비친 불빛은 동굴의 앞쪽 스크린에 투영된다. 죄수들은 스크린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현실(사실)로 인식한다. 어느 날 죄수 한 명이 동굴 밖을 나와봤더니 그곳엔 커다란 나무가 자라고 있고, 나무를 비춰주는 태양도 있었다. 비로소 죄수는 동굴 속에 그림자는 허상이란 걸 깨닫게 된다. 탈옥했던 죄수는 동굴 속 스크린에 비치는 허상을 진짜로 알고 있는 동료들에게 그것은 가짜고, 실제 하는 것은 동굴 밖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자기가 본 바깥세상의 진상(眞相)을 알려줬지만 사람들은 그가 미쳐서 거짓말을 한다며 돌로 쳐서 죽였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와 예수의 생애가 일치하는 걸 볼 수 있다. 예수의 일생에 대한 드라마가 여기에서 짜졌다. 그림자의 세계와 실제의 세계가 있다는 이원론이다. 이게 전 서양사상을 지배하는 이론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반론의 여지가 없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에 대한 모식(模式)이 있기 때문에 이데아란 것이 완벽하고 동굴 밖의 나무가 진짜고 동굴 속에 그림자에 드러난 상은 가짜다. shadow가 실제를 닮으려는 것이 소위 말해서 변증법이 되는 거고, 헤겔의 변증법 이론이다. 목적론(Eros)은 자기Idea를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다. 목적론이 미래의 idea가 있는 것처럼 여긴다. 목적이란 인생을 사는 것도 고착되어 설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그리는 그림에 불과할 수 있는 건데, 그것을 어떻게 관념, 실제론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플라톤을 알아가다 보면 서구 사상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플라톤의 나이브한 성격들이 수많은 문제를 제기했고 20세기까지 같은 문제를 갖고 struck을 해왔으나 21세기엔 철학을 파기해야 할지도 모르다. 진정한 우리의 생각을 담은 철학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