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서양철학사 19강
THESE : 파르메니데스 존재론의 붕괴 과정
일본의 조선침략을 위한 역사왜곡 :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떨 개 했던 이순신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조선 침략을 계획할 때 한국의 역사에 대한 사전조사가 치밀하게 이뤄졌다. 당시 동경대 건축과 교수였던 세끼노사사시는 1910년 전, 후에 조선 13도를 안 다닌 곳 없이 샅샅이 뒤지며 다녔고 그때 조선의 유적은 풀, 숲 더미에 방치된 채 놓여있었는데, 일본은 이미 역사를 발굴하고 연구하며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우리 유적을 보고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유년시절 불국사 석굴암에 갔을 때 사천왕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땐 어떤 보호도 받지 않고 자연 상태로 놓여 있었다.
뒤늦은 역사관의 중요성 인식 : 광개토대왕비의 조작 과정 때 일본인들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1905년 전까지만 해도 이순신 공포증(Phobia)이 있어서 조선과 일본은 과거 한민족이었다는 주장까지 하며 그 배경까지 만들며 철저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막상 한국에 와서 보니 종이호랑이만 못한 걸 알게 된 후부턴 조선역사를 왜곡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의 역사를 그들 손으로 썼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조선 통사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한 고찰이 전무했다. 조선의 통사가 일본인에 의해 쓰이다 보니 민족의 주체적 사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사관을 세우려 한 시도가 있었는데 나철이란 사람이었다. 그 후 신채호, 장도현, 박은식, 정인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역사를 침략 도구로 삼은 일본 : 일본은 조선사 학자들의 주장을 배제한 상태로 경성제국대학을 세웠다. 일본의 의도를 파악한 박시형, 김석형은 일제의 식민사관에 반발하며 월북해서 북한의 역사학계를 장악했다. 그의 후학들이 일본에서 이진에게 영향을 줬고 그의 논문을 윤내원이 집대성해서 장도빈 선생이 그 뒤를 이어갔다. 역사의 관점을 고구려 역사는 고구려인의 시각에서 신라는 신라인의 인식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의 세계, 그들의 인식론으로 봐야 한다. 그 세계로 들어가 감정이 이입된 상태로 바라봐야 한다. 니체도 희랍 비극을 우리가 이해하려면 희랍 비극의 관점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사실에 접근할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구조를 바로잡아야 가능한 일이다.
역사 관점과 인식론 : 지난 시간까지 우리가 파르메니데스를 가지고 이야기했는데 이것도 똑같은 것이다. 그들의 세계, 그들의 인식론으로 바라봐야 한다. 희랍인이 생각하는 세계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박종현 선생님은 희랍인들의 철학의 핵심에 적도(중용) 사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러셀은 희랍인들은 사유에 있어서나, 품성에 있어서 중용을 가장 모른다고 했다.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이론 대립을 보면 전자는 만물은 변한다고 했고 후자는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한 극단적 주장을 위해서 모든 궤변을 동원한다. 극단적인 어떤 사유를 극단적으로 몰고 가려는 경향이 있다.
형이상학의 출발 : 철학이라는 것은 박종현, 러셀이 주장하는 것이 진짜가 아니다. 파르메니데스의 사고에 있어서 "모든 사유는, 언어는 반드시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은 반드시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순신에 대한 사유를 많이 한다. 이순신은 노량 전투, 명량해전에서 이렇게 이렇게 싸웠다. 그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된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대로라면 이순신은 오늘날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게 궤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존재와 사유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우주적인 구라를 쳤다. 우주 전체를 그걸로 존재와 사유의 일치라는 테마를 가지고 전 우주를 설명하려 했다. 이것이 형이상학의 출발이다.
존재와 사유의 일치 : 존재와 사유의 일치라는 생각되고 말하는 것은 무(無) 일 수 없다. 존재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존재라는 것은 Estin이란 말을 쓰는데 영어로 "It is"다. 그 당시엔 "beeing"이 없었다. it is, 또는 it is not으로 쓰였다. 존재의 문제가 서양사람들을 괴롭힌다. 우리는 저 나무는 붉다. 에서 is가 필요 없다. 그러나 서양에서는"that tree is red."를 이해할 때 저 나무는 붉다가 아니라 저 나무는 붉은 상태로 존재한다.라고 해석한다. 서술형 속에 존재가 들어가 있다. 이런 언어적 문제 때문에 존재의 문제가 제기된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대로 하면 "저 여자자는 아름답다, 가 아니라 저 여자는 아름다운 상태로 존재한다."가 된다. 그러나 여자는 홀쭉했던 사람이 뚱뚱해지고, 곱던 얼굴이 거칠어진다. 이유는 "is"가 그 자체가 아니다. 존재 자체가 아니라 감각적인 대상이다. 감성적, 감각적인 견해와 무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러셀은 파르메니데스의 불변 논리는 "모든 것이 다 존재하니까, 어떤 존재가 이 존재로 변하거나 변할 수 없기 때문에 공간 이동 등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난센스다." 파르메니데스의 불변의 논리는 궁극에 들어가면 그 방어를 종교적으로 해버리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하나의 존재일 뿐이다.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결국 파르메니데스에게서 받아들인 것은 " 실체는 파괴되지 않는다.(The indestructibility of substance)"는 존재의 절대성을 서양철학이 수용한 것이다.
존재의 절대성 붕괴 : 불교의 무아(無我)는 이런 개념을 정면으로 깨고 들어갔다. atman(我)은 서양철학의 substance개념이다. 무아(anatman)는 atman(我)에 대비되는 말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 절대성에 대한 이야기는 20세기에 와서 붕괴됐다. 서양미술 전체가 완벽한 플라톤이 말하는 형상의 예술에서 20세기에 형식적인 예술로 인간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철학도 20세기에 와서야 무아 사상(無我思想)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我)가 있다. 불변의 내 아(我)가 있다."라는 생각에 구조주의적 관점에 부정표를 던진 게 막스다. " 그것은 네가 있는 게 아니라, 네가 속한 계급의 아(我)가 있는 거지, 그 계급을 대변하는 너지, 너의 아(我)는 없다. 다만 그 계급에 뭉쳐진 의견(opinion)만 있을 뿐이다. 아(我)가 아(我)를 붕괴시킨 것이다. 프로이트는 "너는 너의 의식의 주체가 아니라, 네가 의식하기 싫어하는 망각의 대상이라"고 하는 무의식의 주체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 : 인간의 모든 가치고, 주체라는 게 다 네가 속한 도덕이라는 계보가 있는 것이다. 니체를 알려면 "신이 죽었다"를 읽을 게 아니라 "도덕의 계보" 하나면 니이체 사상은 끝난다. 인간의 가치나 주체는 다 "노예 노동의 산물"이다. 휴메니즘은 무슨.. 대중적 인간만 있을 뿐이다. 똑같아지고 싶어 하는, 이것이 노예의 특징이다. 채찍에 의해 움직이고, 노예선에서 북소리에 맞춰 "탕"하면 노를 젓는 것처럼 군대에서도 균질적 사회를 원한다. 기본적인 공통 가치관은 노예의 도덕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교과서를 말하는 것도 국민노예로 만들겠다는 속셈이다. 그에 반해 자기주장을 갖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노예에 반하여 귀족 삶이고 극상의 귀족을 니체는 초인이라고 했다.
언어에 의한 존재의 규정 : 인간의 언어라는 것은 언어 자체가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만 해도 언어와 생각되는 것과 존재하는 것이 일치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념이 깨졌다. 불란서에서 양고기(moutton)와 양(sheep)은 구분지어서 표현한다. 영어에서 맵다와 뜨겁다를 hot라는 낱말로 표현한다. 언어의 지도, 그게 바로 인간이다. 소시루의 언어학적 혁명의 시작이다. 비 투게 슈타인 언어라는 것이 하나의 사용(use) 일뿐이다. "사과 다섯 개 가져와" 하면 사과 다섯 개란 것에 대한 의사소통의 문제이지 의미론이고 의문론이고 뭐고 따질 게 없다. 파르메니데스의 언어와 말하여질 수 있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이 말을 20세기에 와서 집약적으로 깨는 것은 모든 사상가의 공통된 문제다. 러셀의 "serious of descripption"에서 '황금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게 뭐냐? 황금산이다.'라고 하면 황금산이란 존재하는 게 된다. 그 말을 따져 보면 X = C라고 할 때, X = 황금으로 이뤄졌고 산 모양이다.라는 진술이 참이라고 할 때,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 되는 C라는 존재는 없다. 러셀의 기술 이론이라는 게 구문론(syntax)에 얽혀있는 문제를 명료하게 해결하면 철학적 문제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황금산이 존재한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을 러셀 때 와서 "Shoot off"하게 됐다. 20세기에 와서 절대론이 붕괴됐고 21세기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
희랍철학의 주역 : 아테네의 소피스트(sophist)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에 대한 대가를 요구했다. 공자(BC551~479)도 육포 하나는 들고 와라! 했는데 돈을 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귀족이라는 얘기다. 아테네에서는 시민 중 유산자와 무산자가 병존했다. 시민의 숫자는 많지 않았고 대부분 노예가 주축을 이뤘다. 노예는 전쟁에서 포로가 된 자들로 아테네가 노예제도를 유지한 것은 귀족들의 부를 유지하는 수단이었고, 노예제도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게 했다. 아테네의 재판은 배심원제도로 이뤄지는데 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그들은 대부분 무지했다. 법정에서 변론을 맡아서 자기변호를 하는 기술을 소피스트가 가르쳤는데 이러한 학문을 수사학(修辭學)이라고 했다. 배심원을 설득하는 것은 도덕성의 유무와 관계가 없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프로타고라스의 말은 나는 나의 기준이 있고,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자기의 기준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다. 어떤 윤리적 결론을 정해놓고 들어가는 것은 종교적 도그마다. 그런 종교에서 해방된 인간이 되려는 것이 희랍철학이다. 오늘날 미국이 Sophist 천국이다. 얼마 전 시위대를 향해 자경단으로 활동하던 18세 소년이 총을 쏴 2명이 죽고 1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을 배심원 전원은 "정당방위로 판결했다. 부상자의 손에 권총이 들려져 있던 영상이 결정적 단서가 됐다. 생명에 대한 경시가 미국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