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

베트남 여행기 5

해암 송구호 2019. 6. 23. 11:04


 


 베트남의 36거리를 전동차로 도는데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선 점포와 가는 길이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뚫려있는 것을 보면서 아주 복잡한 곳이란 생각에 들었다. 우리나라의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과  평화시장을 모아 놓은 것 같이 규모가 컸다. 이곳에 가면 베트남에 없는 것 빼고 다 있다고 한다. 평소에도 복잡한 도로라고 하는데 우리가 관광을 할 때는 땡볕이 내려 쬐는 한낮이라 손님이 뜸한 편이었다. 가끔씩 오토바이가 오갈 뿐 사람의 발길은 비교적 한산했다.

 가이드가 베트남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기업체의 외국 주재원으로 파견을 나왔다가 살면서 점점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여기서 더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표를 쓰고 눌러앉았다고 한다. 그가 베트남에 정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뜻밖에도 이 나라가 내걸고 있는 「국민행복」이라는 국시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 공산국가란 낱말을 떠올리면 억압과 통제, 공동분배와 빈곤이 함께 연상된다. 가까운 곳 북한을 보면서 그 실상을 잘 알고 있다.

 베트남도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선입견은 억압과 통제가 상존할 것이란 우려였다. 하지만 나의 생각이 너무 잘못 돼있었다. 「국민행복」이 이 나라의 국시라고 한다.  지식인, 농민, 노동자, 군인, 청년으로 구성된 국민을 하나로 통합해서 외세를 물리친 베트남은 국민의 행복한 삶을 최우선의 가치로 꼽는 것이 무엇보다 자기 마음에 들어 이 나라에서 살아보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현재 자녀들과 부인은 교육문제 때문에 한국에 남아 있고 자신이 열심히 돈을 벌어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다져지면 함께 살 생각이란다.


  베트남 축구는 요즘 스포츠를 넘어 국가 통합이란 난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분단된 남북이 북베트남에 의해 무력통일을 한 후 남베트남 사람들은 정계 진출을 할 수 없게 됐고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아왔다고 한다. 국토는 통일됐지만 분단으로 생겨났던 이질감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앙금으로 남아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작은 거인 박 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의 국가대표 사령탑을 맡고 난 후 "축구 붐"을 일으키면서 사회적 대통합을 이루는 쾌거를 이뤘다고 한다. 

 과거 2002년 우리나라에서 월드컵 4강에 오를 때 "붉은 악마" 응원단이 경기장을 붉게 물들이고 히딩크 감독이 국민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던 그 순간처럼 축구란 구기종목을 통해 남북 베트남 사람들 간에 서먹서먹했던 감정을 일소(一掃) 하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했다. 베트남의  호찌민이 분단된 나라를 통일했다면 박 항서 감독은 남북간 응어리져 있던 감정을 풀어내고 사회적 통합을 이룬 공을 인정받고 있다. 그를 사부라고 칭하는 것은 극존칭에 해당한단다.  

 이곳에 불고 있는 한류 바람은 대한민국의 이미지와 위상에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과거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나라의 오명을 씨고, 태양의 후예, 대장금, 모래시계, 겨울연가 등 드라마와 K - POP, BTS 등 세계적인 이름을 얻고 있는 음악그룹이  젊은 세대를 자극하고 있고, 박 항서 축구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 팀이 연전연승(連戰連勝)의 위업을 달성하면서 온 국민이 열광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이 급증하면서 한국에 대한 동경도 커지고 있다. 한국 관광객의 숫자와  관광 수익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젊은이가 늘고 있는 것은, 한국어를 할 줄 알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생각이 그들을 한글 공부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어제 영화 알라딘을 보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의 미터기를 보니 기본요금 3,800원으로 조금 인상된 상태라 운전기사에게 "기본요금이 올랐나 봐요?"라고 말을 건네자 5월부터 인상됐다고 대답했다. 이 정도면 생활이 좀 나아지냐고 묻자 가스 비 인상한 것을 상쇄(相殺)하고 나면 크게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택시는 동네 사랑방처럼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태우고 나르다 보니 자연히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점잖은 기사님에게 요즘 사람들이 삶이 어떤지 여쭤봤다. 워낙 실물 경기가 어렵기 때문에 돌아올 답을 예상하긴 했어도 손님 중 대부분이 죽지 못해 살고 있다는 말 뿐이란다.

 요즘 우리는 소비 패턴이 변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온라인 서비스와 빅데이터를 이용한 크라우드 등이 변화의 시작이다. 예전엔 유통과정에 도매라는 중개인이 있었다면 지금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가 다양하게 이뤄지는 것이 변화 중 하나다. 또 인간의 두뇌를 대신하게 될 인공지능은 지식인들의 고유영역을 잠식하고 있다. 이젠 두뇌를 믿고 전문직이란 명함을 내밀던 것들이 소용 없는 시대로 바뀌어 가고 있다. 1인가구가 늘면서 편익성, 간편 위주로 변해가면서 배달이 늘거나 작은 소비를 선호하는 편의점 음식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 인류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류를 비롯해서 우리 삶의 모든 페러다임이 변하면서 새로운 풀렛폼을 만들어 가고 있다. 손에 든 핸드폰이 변화를 이끌어갈 키를 쥐고 있다. 알라딘의 마술램프처럼 핸드폰은 기계와 사람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원격으로 집안 보안 점검에서 냉, 난방은 물론 전원을 켰다 끄는 스마트 홈 시대가 열렸다. 핸드폰으로 집에서 은행 업무를 보거나 자동차 키를 핸드폰으로 전송하는 등 상상 그 이상의 일들이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게다가 기계가 사람의 말을 알아 듣고 작동하기도 한다. 

 심지어 감성의 공감과 이성적인 감정까지 느낄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이 개발되고 있고 자동차도 운전자가 없이 주행할 수 있는 자율주행 차가 개발을 끝내고 제작 단계에 와 있다. 가까운 미래에 기계와 인간이 같은 하늘 아래서 감정을 교류하며 살아갈 날도 머지 않았다. 원격으로 수술을 하거나 드론 등 항공기로 물건을 나르는 택배, 배달도 생겨나고 노인들이 슈트를 입으면 스트롱 맨으로 변해서 젊은이들처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국민 모두가 체감하고 또 그 변화를 따라갈 수 있도록 충분히 알려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줄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혁명 때 "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급격한 문명의 진보는 이를 수용할 자세가 덜되어 있는 사람에겐 "공포요. 절망이다." 어쩌면 죽음을 무릅쓰고 막아야 할 파고이기도 한 것이다. 비록 신 문물이 새로운 미래 세계의 길잡이가 될지라도 그 순간엔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요즘 국민들은 청와대에 계신 어른을 "달나라 대통령"이라고 부른단다. Moon대통령의 시국에 대한 공감 능력 부재가 이런 농을 만들어 낸 것 같다. 국민들은 힘들고, 어렵다고 여기 저기서 아우성인데 청와대는 지금 문제가 없다. 좋아지고 있다는 엉뚱한 말만 늘어놓고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4.6일 토요일 태극기집회에 참가자들이 서울역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하고 있다. 사진=The자유일보

              < 자료 : 태극기 시위대 행진 >

 광화문에 가면 여전히 천막에 또 태극기와 미국의 성조기를 믹싱 한 희한한 깃발이 나풀거린다. 자동차에 매단 확성기를 통해 시끄러운 소리가 지나가는 행인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도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그들은 대부분 육십 후반에서 팔십을 바라보는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로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주도해온 산업 역군이다. 나라가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길 바라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일부는 박정희의 향수를 느끼거나 그 시절 주류로 활동했던 자들이다. 눈에 띄는 것 중 육사 38기란 깃발도 보였다. 지금 우리가 격고 있는 사회적 갈등은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신 인류로 가는 과정에서 오는 문화적 충격이 더 큰 요인이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채용하는데 둔감한 것이 문제다. 변화의 속도는 광속인데 우린 아직도 시속 60키로미터에 머물러 있다. 변화는 시대의 흐름이다. 흐름을 읽지 못하면 우린 고물상의 골동품처럼 소용(所用)없는 뒷방 늙은이로 전락할 것이다. 

 베트남은 작고 미약했지만 그 힘을 하나로 묶고 뭉쳐서 거대한 외세마저 몰아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물매 돌 하나로 골리앗을 무너트린 것처럼 그들 스스로 자유를 지켜냈다. 작금(昨今)의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우선 정치판에선 국민을 외면한 채 당쟁과 속보이는 이권다툼에 혈안이 돼있고, 광화문 거리에는 노동조합이나 각종 이권을 주장하는 단체들의 천막 농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노란색 리본과 태극기는 국민간 분열을 재촉하고 있고 고착돼가는 양상마져 보이고 있다. 지역 감정에 세대간 갈등까지 야기하는 것과 함께 우리 사회에서 하나, 둘 씩 헛점도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휴전선에 이어 해상마져 구멍이 나고 우리의 기술 자본이 해외로 급속히 유출되고 있다. 또 현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성급한 시민들은 대통령의 위상마저 흔들고 있다. 모든 상황들이 무정부 상태나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계의 나사가 풀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게 상상할수 있다. 국민이 현 정부를 신뢰하지 않게 되면 아무리 좋은 정부의 정책도 무용지물이 된다. 

 어수선함 속에 이득을 보게 될 세력이 있는 것도 문제다. 어부지리(漁父之利)란 고사가 있다. 내부 혼란에 손뼉 칠 주변국가 일본과 북쪽의 김씨 왕조가 우리 현실을 주시하고 있다는 점을 한시라도 잊으면 안 된다.

 뚝이 터지기 전 전조증상을 간파하지 못하면 일순간 뚝이 무너져 내리고 삶의 터전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국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 어선이 우리 영해를 넘어 항구에 정박할 때까지 우리 군은 간파하지 못하는 무사안일함도 문제였지만, 그 후 변명과 거짓으로 일관한 책임자의 태도는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진실을 가리는 변명이나 거짓은 사실을 왜곡해서 위험을  낳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 GP로 귀순한 북한 병사가 철책 앞에까지 접근해 노크를 한 것이나, 철책 문에 목함지뢰를 설치한 사례에서 보듯 우리의 안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어디 국방뿐인가? 경제에서 정치까지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국난을 당할 때 위정자들은 자의적 해석을 통해 적의 침략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채 화를 당했었다. 

  베트남에는 라이따이한이라는 혼혈아들이 살고 있다. 대부분 베트남 전쟁 때 현지인과 한국인들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다. 1975년 베트남이 통일된 후 철수를 할 때 미국의 경우 부인과 아이 뿐 아니라 가정부까지 본국으로 데려간 반면 우리나라는 가족의 입국을 불허했다. 과거 해방 직후 사할린으로 징용을 갔던 한국인들도 본국으로 돌아오려했을 때 한국 정부는 배한척도 띄우지 않았었다. 일본은 자국민 모두를 데려간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과거 이래로 국가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를 하기보다 행정적 편익성과 몰가치적 태도로 일관해왔었다. 국가가 국민에게 보인 태도는 방관, 외면으로 한(恨)과 불신(不信)을 심어주었다. 국민에게 애국심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 일 수 있다. 미국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시민에게 최고의 예우로 대하고 그들의 명예를 추켜세워줘 죽음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갖도록 한다. 우린 개죽음이란 표현으로 희생에 대한 비참한 감정을 드러낸다.   

 위정자(爲政者)는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모으고 그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도록 국민을 위한 헌신(獻身)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나라 장군 오기가 위나라로 망명가서 활동할 때 병사의 등에 고름을 입으로 빨아낸 일화는 지도자의 리더쉽을 말할 때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다. 

 대통령은 통합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국민들로부터 충성심을 이끌어 낼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한일 관계가 꼬인데도 대통령의 직설적 표현이 한몫했다. 외교에서 쓰이는 언어적 기교는 다각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여지를 열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대감을 일으키는 우를 범하는 것은 정치의 미숙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국민행복을 이룬다며 최저임금을 올리고 서민경제를 파탄 낸 것이나 제반사항이 정치의 미숙에서 발생된 현상이다. 거대 양당 중 믿고 맡길만한 당이 없다는 현실에 민심은 표류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신인류로 거듭나는 시대를 살아내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즐기면서 변화의 바람에 몸을 실어야 한다. 정치인들도 국가와 국민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자기 정치에 매몰되면 안 된다. 국민이 봉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민 통합과 국민의 신뢰를 이끌어 내야 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로 국민의 힘을 모으면 더 나은 미래가 분명 올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할 준비가 되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