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종로의 거리에 태극기 바람

해암 송구호 2018. 2. 4. 11:12


  차가운 한파가 또 찾아오려는 것인지, 바람이 세차게 분다. 오늘은 아내가 종로에서 약속이 있어 산행 대신 내게 찾아온 자유의 시간을 어떻게 누릴까 고민하다 오랜만에 교보문고에 들려 관심 있는 책을 보려고 집을 나섰다. 오후 날씨가 춥다는 뉴스를 들어 속내의도 챙겨 입고 나와서 몸은 춥지 않았는데 귓볼을 스치는 매서운 바람은 겨우내 추위로 오그라들었던 몸을 지치게 만들었다. 혼자서 시내를 나가는 것도 생경(生硬)맞아 도로 집에 갈까 고민하다 책방은 나중에 가도 되지만 멈춰버린 시계의 밧데리를 교환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종로행 버스에 올랐다. 아내가 종로에서 모임이 있으니 돌아올 때는 함께 올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하차해 횡단보도 앞에 다다르니 소수 정당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계단에 앉아 지지자의 연설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면, 겨울 한파도 그들을 비껴가고 있는 양 보였다. 
교보문고에 들어서니 책을 읽고 고르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올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관심을 두고 관련서적을 헌팅하기 위해 갔는데 의외로 기대했던 서적을 찾지 못한 채 엉뚱한 철학 쪽의 서적 한 권을 사들고 종로 시내로 발길을 옮겼다. 멈춰 있는 시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다음 과제였기 때문이다. 
 종로거리를 두리번거리며 걷는 것도 오래간만이다. 거리에는 태극기를 든 시위대 한 무리가
지나고 있었다. 박근혜정부 때 관제데모에 동원된 이래로 신앙처럼 굳어진 골수 지지자들이 썬그라스에 마스크를 한 채 태극기를 흔들며 선동차량의 뒤를 따르고 있고, 일부는 대열을 이탈해서 삼삼오오 패를 이뤄 뒤풀이를 하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으레 시위 후 술자리를 함께 했던 듯 거기로 가자며 눈치를 보내는데 나이가 든 남과 여는 서로 이성의 감정을 서스름 없이 드러냈다. 그런데 그들의 공통된 모습은 한결같이 추레하고 남루하다는 것이다. 시위대의 모습이 신기한듯 외국인 한 명이 그들의 뒤를 쫓으며 사진기의 셔터를 연신 누르며 히쭉거린다. 
 Time Zone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보니 상가의 공실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목이 좋은 지하철 출구가 인접(隣接)한 곳이나 횡단보도 앞, 상가건물이 임대로 나와 있었다. 임대료가 비교적 비싼 곳에서 버티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상권이 죽어간다는 말이다. 70년대 말 종로 2가는 뒷사람에게 떠밀려 가야 할 만큼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었다. 강남개발로 명문고등학교를 비롯한 유명학원이 옮겨지면서 강북의 허브, 종로는 점차 생기를 잃어 갔고 정부청사와 공공기관의 지역 이전으로 유동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쇠락(衰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시계수리점에 가서 건전지 교체를 의뢰하고 종로 상권을 물으니 요즘 어렵다는 말을 하면서 뒷쪽 피맛골은 더욱 심하다는 말을 했다.
  건전지 교체를 하던 수리공이 정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시계가 고장날 수 있다고 말하며 자신은 이곳을 알고 온 줄 알았다고 말한다. 아내가 북유럽 여행 중 사다준 시계로 여행을 갈 때가 아니면 책상 위에 올려 놓고 테이블 시계로 사용하다 보니  스위스에서 건너온 물건이란 것을 잊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나름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할 물건이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나의 전화를 제대로 받을 때가 없다. 얼마 전, 전 직장동료들과 산행을 하던 중 옆집 창고주가 전화를 했다. 내 차 때문에 물건을 꺼낼 수 없으니 차를 이동시켜 달라는 전화였는데 상대방의 목소리가 격앙돼있어 다급한 마음에 아내에게 전화를 수차례 해도 연결이 안 되었다.
결국 다른 사람을 통해 우회적으로 아내와 연결되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오늘 아침에 아내를 먼저 배웅하며 얼마전 일을 상기시키고 전화하면 즉시 받으라고 신신당부(申申當付)를 했는데 또 전화를 받지 않았다. 평소 전화를 자주 하지 않다 보니 아내 전화기는 들고 다니는 악세서리에 불과하다.
  아내는 전 직장동료들과 만남이 길어지는 듯 나의 전화에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저녁까지 먹은 상태라고 하니 나홀로 식당에 들어가야 할 상황이 되서 종로의 뒷골목을 걸어다니며 마음에 드는 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과거에는 피맛골이라해서 서민음식이 주를 이뤘고 사람들도 바글바글했는데 이쪽 저쪽을 다녀봐도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먹을만한 음식은 이 인분부터 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 먹을 게 없다. 요즘 종로바닥의 주빈(主賓)은 태극기부대의 노년층이다. 그들의 주머니 사정은 넉넉치 못해서 값싸고, 양이 많은 집으로 몰릴 수 밖에 없다.
  나도 그들이 찾는 순대국밥 집을 들어가서 뼈다귀탕을 시키고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내
바로 옆 테이블에서 태극기 집회 후 뒤풀이를 하는 듯 보이는 남, 여가 앉아 술을 마시는데 남자는 자신의 주변사람을 들먹이며 한창 작업맨트를 날리고, 여자는 그 남자의 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남자가 왜 집회에 나왔냐고 묻자 여자는 외로워서라고 답한다. 태극기 집회는 고독한 노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파고다 공원은 오래 전부터 오갈데 없는 노인들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뒷골목은 음식 값이 저렴하다. 돈 없는 노인을 상대해 장사를 하다보니 당연한 것일 테지만. 종로의 슬럼화가 정치의 슬럼화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오갈데 없던 노인들에게 박근혜 정부는 돈과 태극기를 주고 관선데모에 동원했었는데 그들은 집회를 통해 외로운 사람들끼리 동병상련을 느끼며 안부를 묻고 막걸리 한잔 기울이는 것이 문화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강남의 부동산이 들썩거릴 때 강북 상권은 곡소리가 나고 있다. 이 대열에 태극기 부대가 한 몫 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