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아내를 탐하지마라!
성이란 글자는 다양한 의미를 함유(含有)하고 있다. 뿌리의 바탕을 말하는 성(姓), 세상의 울림을 담는 소리 성(聲), 어떤 일을 이루는 성(成), 우주의 빛이 되는 별성(星), 정성의 성(誠), 외적의 침략을 막아주는 울의 성(城), 인간의 참된 길을 제시하는 성인 성(聖) 그리고 성품 성(性)이다. 성이란 단어 속에 담겨진 의미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중에서 성(性 / sex)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추잡할 수 있고 성스러울 수 있는 오묘함을 지녔다.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세대를 이어가는 징검다리로서의 성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이다. 과거와 현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했으니 새 생명의 잉태와 탄생은 성스러운 성(聖)이 된다. 그러나 유희(遊戱)의 성은 인간의 방종(放縱), 타락(墮落)과 문란(紊亂)을 초래할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가옥 구조는 안방과 사랑채가 구분되어 있다. 안방에는 명문가의 양반집 딸, 즉 가문대 가문이 결합한 사대부의 정실부인이 살았고 사랑채에는 가무에 능한 측실부인, 다시 말해 첩(妾)이 살았다. 정실부인은 집안의 대를 잇고 가정의 대소사를 챙기는 안방마님이다. 반면 측실부인은 남편의 오락(娛樂)과 여흥(餘興)을 돋우는 역할을 했다.
로마시대의 성은 지배적인 성격이 강했다. 전쟁에서 노획물로 데려온 노예는 로마사회에서 그들이 지배하고 다스려야 할 대상이었다. 남, 여를 불문하고 그들을 지배하는데 있어 성은 상대적 우월성을 나타내는 힘으로 작용했다. 남자는 성인이 되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창녀촌으로 갔다. 그리고 능숙한 매춘부의 손에 이끌려 성에 눈을 떴다. 그들이 배운 성은 단순한 쾌락보다 더 강한 지배적 성을 배우면서 로마인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동성애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곧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종속 관계를 확인하는 의식과 같았기 때문이다.
로마의 명문가 여성은 조선시대 사대부 여인들처럼 결혼해서 그 집안의 대를 잇는 역할에 충실해야 했다. 그것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뻘 되는 남편과 결혼해야 했고 대부분 정략혼으로 딸의 생사여탈권을 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와야 했다. 당시 가부장권은 가족에게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능력을 지녔고 이로 인해 딸들은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다. 로마제정 후기로 접어들면서 성적으로 억압 받던 여인들의 일탈로 로마사회는 환락의 도시로 변한다.
조선시대 매춘이 성행하면서 윤리적 문제가 대두(擡頭)되자 세종대왕은 매춘 행위를 근절(根絶)할 방책을 마련코자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들은 윤락가를 없앨 경우 젊은 혈기의 장정들이 여염집 담장을 넘어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당할 수 있다고 했다. 오백 년 전의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다. 청량리 588과 미아리 사창가가 도시 재개발로 사라진 후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여염집 담장을 넘는 사건이 작년에 일어났다. 현역 군인이 가정집 창문을 타고 넘어가 베란다의 세탁기 위에 옷을 벗어 놓고 잠자고 있던 유부녀를 겁탈 하려던 사건이다. 다행히 옆방에서 잠자던 남편이 그를 제압하고 경찰에 넘겨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었다. 과거 이래로 집창촌은 필요악이었던 셈이다.
장례식장에 문상을 갔던 검찰 간부가 여검사의 엉덩이를 만지는 것을 보고도 묵인하는 상사와 동료들, 이를 용인하는 종교적 관용은 이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이다. " 너 고소할 거야 !"로 유명한 변호사가 홍콩에서 미모의 여성과 벌인 화려한 외유(外遊)가 또 다시 회자되는 것도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이다. 아버지가 딸에게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도록 한 후 유사 성행위를 벌이고 살해하는 행위, 섬마을 선생을 동네 청년들이 집단 성폭행하는 행위, 아버지가 딸을 강간하는 행위,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성폭행 하는 행위, 어린 아이를 성폭행하는 행위 등, 쓰고 써도 모자랄 성(性)의 일탈은 우리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징조다. 부패(腐敗)와 타락(墮落)으로 찌든 사회에서 우리는 본성(本性)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성(性)은 그 시대의 윤리와 도덕의 바로미터다.
조두순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던 어린 아이는 평생 귀저기를 차는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는 취중에 벌어진 일이라 해서 감형을 받아서 조만간 출소한다고 한다. 아이를 기르는 부모에겐 공포가 될 수 있다. 성 범죄자에게 전자 발찌를 착용시키는 것은 예방 효과가 별로 없어 보인다. 최근 전자 발찌를 착용한 채 편의점 여직원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한 후 자살을 한 사건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상간(相姦)은 둘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해체를 가져온다. 부부는 신뢰가 무너질 때, 님에서 남이 되는 것이다. 도도맘의 남편이 강변(姜辯)에게 한 말이 인상적이다. " 앞으로 또 볼 날이 더 있을 겁니다. 아내와 아들 손 꼭 잡고 예배당에 가서 이렇게 기도 하십시오. 앞으로 절대 남의 아내를 탐하지 않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