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최고 권력의 숙주(宿主, host) 최순실 게이트

해암 송구호 2016. 10. 27. 14:34


동충하초(冬蟲夏草)는 곤충류에 버섯의 포자가 침투해서 살아있는 생명체에 자리를 잡고 영양분을 먹으면서 성장하는 버섯이다. 숙주(宿主) 또는 기생(寄生)이라고 하는 데 문제는 저 살자고 다른 생명체를 멸절(滅絶)시키는 것이다. 인간에게도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종교의 패악(悖惡) 중에 심약한 상태의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마치 그의 보호자가 될 것처럼  위로하는 가운데 신뢰감을 쌓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1974년 8월15일은 우리국민을 큰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있었다. 육 여사의 피격 사건이다. 북한의 소행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도 진실 공방이 여전한 미궁의 사건이다. 온 국민의 비탄이 얼마나 컸던지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가 소에게 먹이려고 꼴을 베어 지게에 짊어지고 집으로 들어오시고 나는 라디오 음악을 듣던 중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발표한 육여사의 서거 소식과 함께 흘러나오는 무거운 선율의 장송곡을 들으며 통곡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온 국민이 슬퍼했던 육여사는 지금 되집어 보니 조선시대의 왕후처럼 국모로 숭앙받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국민의 상실감도 그렇게 큰데 하물며 가족의 정신적 고통은 상상 이상 이었을 것이다.  육여사는 대통령에게 바른소리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장기 집권에도 불구하고 인척의 부패가 없었던 것이나 경제 발전을 뚝심있게 밀어부친 이면에는 육여사의 내조가 큰 역할을 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나 소외된 계층을 챙기는 일을 소리 없이 도와준 것도 영부인의 몫이었다. 육여사 사망 후 가족이 느낀 공통점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었다. 박대통령도 이무렵 부터 정무에 대한 판단력이 흐려졌고 차지철과 같은 간신배를 가까이 하며 음주가무에 깊히 빠져들게 된 것은 외로움이었다. 부마사태로 시국은 혼란스러웠는데 육여사의 빈 자리를 대신하던 영애(令愛)는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 최태민의 편지를 통해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심리적 기대감과 어머니의 환영(幻影)에 빠져 들었다. 
 최태민은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났고 일제 패망 3년 전에 일본 순사로 들어가 근무하다 해방 후 반민특위의 사정 칼날이 무색해진 후, 강원도경에서 경찰로 근무하다 1954년 여자와 바람을 피워 간통혐의로 고소되자 부산의 모 사찰로 숨어들어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됐다. 그리고 1969년 가톨릭에서 영세를 받고 가톨릭에 잠시 다니다 1970년 불교, 기독교, 천도교의 교리를 짜집기해서 영세교를 만들고 자칭 원자경, 칙신, 태자마마라고 부르며 사이비 종교를 만들었다.
 그와 박근혜대통령이 만난 것은 1974년 육여사 사망 후 일이다. 편지로 육여사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는 나(최태민)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육여사가 현몽하여 말하기를 "내가 죽은 것은 딸을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려 하는 것인데 어리석게 슬퍼하기 만 한다"고 했다며 접근했다. 무당의 헛소리와 다를게 없었지만 그에게는 어머니의 혼령을 만날 수 있다는 미혹(迷惑)에 빠져 그를 깊히 신뢰하게 된 것이다. 그의 말은 주술사의 체면효과를 발휘한 듯 하다.
 김재규가 박대통령 시해 후 살해동기에서도 최태민을 벌주지 않은 박정희 대통령이 국정을 잘못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태후 대통령 시절에 박근령씨는 언니를 최태민 부녀로부터 구해 우리가족을 살려달라고 했지만 아마 귀담아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당시를 회상하는 박지만은 물이 피보다 진할 수 있다며 두 사람 관계의 심각성을 밝히기도 했었다.
 최태민은 그후 육영재단, 영수 장학회등 박대통령 일가의 재산분쟁 개입에서부터 박대통령이 힘든 시절을 보낼 때 지근거리에서 그림자처럼 따라 붙었고 딸 최순실도 자매처럼 굴며 그의 지근거리에서 위선(僞善)을 베풀었다.
 결국 두 부녀는 박대통령의 숙주로 그의 삶에 깊이 관여해 왔고 정신적 지주로 자리메김하게 되면서 둘 사이 유착관계가 깊어진듯 보인다. 국가의 최고자리에 오른 후에도 국가의 중대사를 그녀와 상의 해야할만큼 종교적 체면에 빠져든 것 같다. 북한 정권이 2년안에 무너질 것이란 말에 통일 대박이란 말이 나왔다고 하고 청와대 행정관이 30Cm 가량 되는 문건을 최씨 사무실로 날랐다고 하는 믿기 어려운 상황에 국민들은 당황스러워 하고 불안해 하고 있다. 나라의 운명을 사이비 종교의 주술에 의존한다는 사실에 황당스럽고 개탄스러울 뿐이다.
 과거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으로 박관천 경정이 했던 서열 1위가 최순실, 2위가 정윤회, 3위가 박대통령이란 말이 당시에 미친소리한다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는데 되짚어 보니 사실이었다며 언론에서 재 조명을 받고 있다. 이전에 십상시니 뭐니 하는 것과 대통령이 구두보고 대신 서면보고를 받는 것 등이 이해되지 않다가, 퍼즐 조각처럼 하나 둘씩 맞혀지는 것 같다는 말에 실망의 조각도 뭉쳐져 점점 커져간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최씨 일가가 어떻게 부를 축적해왔는지도 따져야 한다. 사이비 교주가 물려준 유산치고는 터무니 없게 많다. 잘못된 재산축적이 있다면 응당 국가에 환원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에 끼친 악영향을 고려할 때 잘못된 점은 이번 기회에 뿌리뽑아야 한다. 국가의 기밀문서를 자유롭게 열람하면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부를 축적했다면 이 또한 환수되어야 한다. 또 최씨 딸이 이화여대에 들어갈 실력도 없는데 들어가게 된 경위나 교사나 교수에게 최씨 모녀가 했던 갑질도 조사돼야 한다.
 삐뚤어진 심성으로 국민에게 큰 상처를 준 모녀는 뒤로 숨지말고 국민앞에 나와 석고대죄하여야 한다. 호가호위하는 당신들 때문에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점점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학교는 시국선언으로 시끄럽고 정치권에서는 중립적 거국내각을 구성하자고 한다. 신뢰를 잃은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져 통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일부 학생들은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 숙주는 궁극적으로 몸체를 죽게 만드는 것이다. 위로한다고 다가가서 삶을 송두리 채 빼앗아 간 최씨일가나 그들의 위선(僞善)에 판단력을 잃어버린 대통령이 안됐다. 10월26일이 부친의 서거일인데 공교롭게도 그 무렵 딸의 정치적 운명도 유고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