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변화하는 결혼 풍속도

해암 송구호 2016. 10. 16. 09:23

내가 어렸을 때 윗집 누나가 결혼을 했다. 어린 마음에도 신부가 곱고 예뻤다는 기억이 남아있다. 집 뜰에서 치뤄지는 혼례식에 신랑과 신부가 맞절을 하고 술을 나눠 먹는 모습, 산 닭을 초례상 위에 놓았다 풀어주는 모습, 기러기 한쌍(木雁)을 들고 나타나는 신랑의 모습, 고개를 들지 못하는 신부가 연지 곤지를 찍고 양 옆에서 붙잡아주는 동네 아주머니가 시키는 대로 힘들게 맞절하는 모습이나 결혼식을 주관하는 사람이 한복을 차려입고 행사를 주관하던 일, 동네 사람들이 마당을 빙 둘러 서서 얼굴을 들이 밀고 순간 순간을 지켜보며 히쭉거리던 모습 그리고 불꽃이 팍 튀는 요상한 물체를 터트리는 사진사가 시진을 찍던 모습 등이 생각난다. 
 우리집 위에 사는 누나는 군인에게 시집갔는데 당시 군용 짚차가 동네어귀에 들어올 때 뒤에서 기름냄새(배출가스)를 맡겠다고 뒤따라 뛰던 생각이 난다. 내가 어릴 때 결혼식은 동네 잔치였다. 집집마다 사는 형편은 달라도 동네사람들은 함께 즐거워 하고, 떡이며 국수를 함께 나누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겼다. 좀더 형편이 좋은 집에서는 돼지를 잡기도 했다. 동네 젊은 형들이 직접 돼지를 잡고 머리와 내장을 물에 삶아 나눠 먹던 것이 눈에 선하다. 특히  생간을 썰어 놓고 소주 한잔을 하는 형들을 보면서 나도 어른이 되면 해봐야지 했는데 도회지로 떠나면서 그런 추억은 경험하지 못했다.
 어제 천안에 다녀왔다. 아내와 아침밥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옛날 완행열차 비들기호를 상상하면서 천안을 지나 아산까지 다니는 전철을 타고 동네 깨복쟁이 친구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동네 친구끼리 친목 모임을 갖고 있어 이 친구의 딸이 어릴적 코흘릴 때 모습부터 지켜봐왔던 터라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사는 것 잠깐이네, 더도말고 한 20년만 젊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농으로 나누면서 앞서가는 세월 앞에 점점 퇴색되어가는 우리모습에 아쉬워한 하루였다. 반면 친구 아버지는 이웃에서 살며 알고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오던 친구가 인사를 드렸는데 알아보지 못하더라며 머쓱해 했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반백의 머리와 가늘어지는 모발을 보면서 젊음은 어디로 숨고 자꾸 자꾸 아버지의 옛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어릴적 천진난만하던 친구들이 이제 손발이 둔하고 느려져서 겨우 제 한 몸 추스린다.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형형색색의 단풍잎처럼 우리도 인생의 황혼기(黃昏期)를 맞고 있는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우리가 하던 방식을 탈피하려는 신세대의 결혼모습을 목도(目睹)했다. 결혼식에서 신혼부부를 맞던 주례선생님이 없고 엄숙하거나 아님 눈물 콧물 흘리던 신부 대신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한 신부가 신랑을 바라보면서 좋아 어쩔줄 모르는 모습, 그리고 자신들의 결혼을 당당히 밝히면서 이런 아내, 남편으로 살겠다고 포부를 밝히고 또 신랑 신부의 아버지는 자식의 성장과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족 친지 앞에서 당부하는 모습, 신랑과 신부가 자신들의 결혼 축하노래를 부르며 끼를 발산하는 모습 등에서 예전과 사뭇 다른 방향으로 결혼식이 치뤄지고 있었다. 페러다임(Paradigm)의 변화다. 과거에 결혼이 형식을 중시했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의 본 목적에 충실하려하고 있다. 보여지는 의식에서 자신들의 놀이로 전환하고 있다.
 최근 호텔에서 사치(奢侈)스런 결혼 장면을 보면서 눈살이 찌프러진 적이 있었는데 앞으로 결혼 풍속도는 분명 변화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되도록 작은 결혼식을 올리고 정말 축하받을 수 있는 예식이 되도록 하객도 가려 받고, 예식비용도 스스로 마련하는 선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뜻있는 결혼이 되도록 축의금을 어쩔 수 없이 받게 된다면 사회 미자립 계층을 지원하는 비용으로 쓸 수 있게 전액 기브(Give)하는 것도 뜻깊을 듯하다. 
 예식장에서 비싼 돈을 들여 예식비용을 낭비하느니 아름다운 자연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같다. 결혼 예복도 개성에 따라 연출하고 예식도 정말 마음껏 서로 축하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30분마다 틀로 찍어내듯 신랑 신부가 부부가 되는 것보다 개성있는 예식을 올리고 가족들이 충분이 공감하는 놀이마당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소박함 속에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결혼식, 결혼식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입고리가 올라갈 수 있도록 추억을 만드는 것이다. 유명한 배우가 정선 보리밭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솥을 걸고 이웃과 음식을 나누던 소박하고 정겨운 모습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같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의 글귀처럼 시작은 소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결혼식을 올리는 당사자가 행복하고 자유로운 날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객이 전도 되어서는 안된다. 사교장에 꾸미개처럼 결혼 당사자의 존재가 의미 없게 비춰지는 시대는 마감되어야 한다. 우리 딸들이 결혼 할 때는 3부로 나눠서 식을 꾸미고 싶다.  과거 유년시대의 회상(부모), 현재의 모습(친구), 미래의 꿈(신랑신부)이다. 결혼식이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축복하는 자리인 만큼 그들의 미래를 듣고 축복해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주인공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