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돌아가는 시간 속의 장모님
어제 딸 둘과 장모님을 만나러 갔다. 평소 장모님이 과일을 제일로 치셨기 때문에 제철 과일 중 가장 맛있는 거봉 포도와 복숭아를 사서 씻어 가져갔다. 복숭아 중에서도 당도가 좋고 큰 것을 특히 좋아했다. 아내는 이제껏 한번도 우리를 위해 먹어본 적 없는 비싼거라며 어머니가 좋아할 것을 잔뜩 기대하는 눈치다.
11시 30분경 집을 나서면서 작은 딸이 요즘 직장에서 업무용 차를 이용할 일이 있어 운전을 한다며 집에 돌아올 때 자기가 운전을 하면 안될까를 물었다. 운전자 종합보험에 들어 있지 않아서 안되고 혹여 들어 있다해도 온 가족을 태운 상태에서 초보운전자에게 핸들을 맡기기엔 불안해 좀더 운전을 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집에서 서울 외곽도로를 타고 가니 비교적 빠른 시간에 도착할 수 있자 아내가 가깝다며 자주 오자고 한다. 장모님께서 딸들이 어릴 때 지근거리에서 많이 보살펴 주셨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할머니의 존재가 남다르다. 큰딸이 몇년 전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를 갔다 올 때 할머니 속옷만 챙겨왔었다. 자기 딴에는 할머니가 키워주신 것에 마음 깊이 감사했던 모양이다. 우리의 선물은 따로 준비하지 않아 그 땐 조금 서운한 감정도 없지 않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릴 때 할머니의 보살핌이 컸었구나하는 생각에 의당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딸아이가 추석 보너스를 타면 할머니 선물로 무엇을 할까 궁리했다. 이미 할머니는 선물을 받고 기뻐하실 수 없는 분인데도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매번 면회갈 때마다 걸치고 나오는 잠바가 하나라서 잠바나 입을 옷을 사드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면회 때 휠체어를 타고 나오시는 장모님은 우리집에 올 때나 여기서도 하나 밖에 없는 분홍색 잠바를 입고 분홍색 모자를 쓴 모습으로 나오셨다. 처남댁에 계실 때는 얼굴이 맑지 않았는데 요양원에 계시면서 오히려 얼굴에 편안한 모습이 좋아보였다. 장모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그냥 우신다. 왜 우냐고 물어도 아무런 대답이 없이 엉엉 소리내어 울다가 왜 우냐고 묻고 그만 그치라는 말에 일순간 뚝 그쳤다. 난 처음 면회 때 아내의 우는 모습을 보고 따라 우시더니 우리를 보면 우는가보다 했는데, 관리자의 말에 따르면 처남이 면회를 와도 우신다고 했다. 아마도 기억에 남아있는 한조각의 감정이 당신을 슬프게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요양원 관리자의 말로는 장모님이 아들이 불쌍해서 울었다고 했다는데 그런 것 때문일까? 아님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언제 울었냐 싶게 아이들의 재롱에 간혹 웃기도 하는데 우리와 짧은 면회시간에 벌써 돌아가시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우리가 함께 먹으려고 싸간 과일을 내 보이자 다른 할머니들과 나눠 먹겠다면서 입도 대지 않고 가져가겠다고 하신다. 장모님이 벌써 이곳 분들과 잘 어울리고 계시나 하는 생각에 돌보시는 아주머니께 물으니 어머니의 이런 행동에 이해가 잘 안되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여전히 혼자서 방에만 계신다고 했다.
관리자는 장모님의 치매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는 말을 했다. 대화 중에 장모님은 당신의 나이가 70세라고 하시는데 몇 개월 전에 78세에서 무려 8년의 기억이 사라졌나보다.
우린 점심도 먹지 않고 면회를 왔기 때문에 배고픔이 속쓰림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좀더 함께 하고 싶은 생각에 장모님을 모시고 요양원 앞 호숫가를 산책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장모님 모습에서 짧은 세월 속에서 큰 변화를 느끼며 허무함이 가슴에 밀려옴을 느낀다. 우리 다음 세대는 맞벌이 부부가 필연적일테고 부모의 부양은 더욱 힘든 것이 현실의 문제다. 행복한 노후를 맞이할 무슨 궁리가 필요한데 고민할 때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 몇몇이 함께 가까운 곳에 어울러 사는 것은 어떨까? 고독한 죽음을 맞지 않으려면 함께할 수 있는 이웃(隣)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