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

로마 황제의 휴양지 카프리 섬

해암 송구호 2016. 8. 21. 13:44



카프리 섬은 이탈리아 南部 소렌토 반도 앞바다에 있다. 서쪽은 높이 600m를 넘는 고지(高地)를 이루고 섬 전체는 용암(鎔巖)으로 뒤덮여 있다. 올리브와 과일을 산출(産出)하며 온난(溫暖)한 기후(氣候)와 풍경(風景)이 아름다운 섬이다. 로마 시대부터 알려진 "푸른 동굴"은 길이 53m 너비 30m, 높이 15m의 해식동굴(海蝕洞窟)인데 햇빛이 바다물을 통해 동굴안을 푸른 빛으로 채운다. 로마시대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티베리우스 황제의 별장이 남아 있다.

 이탈리아 남부는 아직도 마피아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다. 쏘렌토는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항구에서 느끼는 풍경은, 미항(美港)의 의미가 무색(無色)할 민큼 퇴색(退色)했다. 항구 주변은 슬럼가처럼 쓰레기와 낚은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고 부두 인근에 주민들도 삶에 찌든 모습이 외모(外貌)에서 드러났다. 우리 일행이 탄 쾌속선은 거친 파도에도 굉음을 내며 카프리섬의 마리나 그란데 항구에 40여분만에 안착(安着)했다. 패키지 여행의 장점은 유명한 곳을 콕 찝어서 보는 것이다. 반면 단점은 표피적(表皮的)인 부분만 수박 겉핥기로 끝내는 것이다. 우리는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승합차(乘合車)에 올랐다. 1인용 곤돌라가 있는 산 중턱까지 가기위해서다.

 꼬불꼬불 한 산길을 자유자재로 달리는 승합차의 곡예운전(曲藝運轉)은 歎聲을 자아내게 했다.

1인용 곤돌라는 안전에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탑승(搭乘) 후 정상에 올라가는 동안 눈앞에 펼처지는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검푸른 바다와 하얗게 칠해서 더욱 돋보이는 집 그리고 하얀 물보라를 뿌리며 달리는 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지중해 햇살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몸을 짓누르는 듯한 뜨거움이다.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고 시원한 그늘막에서 숨고르기를 한 후 다시 하산한다. 우리의 여정은 잠시 잠깐, 순간 이동을 하는 것이 고작이니 더욱 깊은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이 이번 패키지 여행의 숙명(宿命)이다. 곤돌라를 타고 내려와 산 중덕에 난 오솔길을 걸으며 다시 카프리 섬에 연해있는 해안선(海岸線)에 눈길을 돌리니 역시 아름답다. 로마 황제가 별장을 짓고 휴가를 즐겼던 것이 이해가 될 만큼 바다가 아름답고 예쁘다. 

 로마 1대 황제 아우구스 투스와 티베리우스의 별장이 이곳에 있다. 티베리우스(BC42~AD37)는 카프리 섬에서 로마를 통치한 것으로 有名하다. 어머니 리비아 두루실라가 아우구스투스와 재혼(再婚)하면서 제 2대 로마 황제의 자리에 오른 티베리우스는 부인 빕사나와 이혼하고 아우구스의 딸 율리아와 정략 결혼(政略 結婚)을 했다. 그의 結婚 生活은 행복(幸福)하지 않았다. 카프리 섬에 은둔(隱遁)한 것도 어찌보면 꼴보기 싫은 사람들을 피해 들어왔었는지 모른다. 부인 율리아는 문란한 성생활(性生活)로 감옥(監獄)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티베리우스는 로마의 財政 健全化에 힘쓴 황제다. 그리고 책임감(責任感)이 투철했다. 동방문화가 유입되면서 황제를 신격화(神格化)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다. 그는 로마를 반석(盤石)위에 올려 놓았으나 개인적 삶은 불행했다. 당시 연애(戀愛)로 만난 티베리우스와 빕사나는 서로 사랑했다. 그러나 황제 후계자가 되면서 아우구스투스의 딸 율리아와 강제 결혼을 하면서 둘은 헤어졌다.티베리우스는 강제 이혼을 당한후 그녀를 그리워했는데 원로원의 아내가 된 빕사나를 통곡하며 불렀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그의 장인이자 의붓 아버지는 두사람이 더 이상 만나지 못하도록 강제(强制)로 막았고 황제가 된 후에도 사랑하는 여인을 끝내 잊지 못한 채 카프리 섬에서 은둔(隱遁)의 삶을 살았다. 아우그스투스의 딸 율리아는 남편의사랑을 받지 못하고 여러 남자의 품에 떠도는 타락( 墮落)의 길을 걷고 말았다. 로마에서 血統을 중시하는 것 때문에 결혼 관계(結婚 關係)가 복잡했는데 정략결혼은 권력(勸力)은 손에 쥘수는 있었으나  두 사람 사이의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카프리 섬은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속에 묻고 세상을 등진 로마 황제의 비애(悲哀)가 묻어 있는 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