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쓰임새의 끝은 어디인가?

해암 송구호 2016. 4. 10. 17:39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전범 히틀러는 유태인에게 유독 가혹한 형벌을 가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유태인을 끌고와 노동을 시키며 하루 한끼의 물죽을 주었다고 한다. 그들이 일터를 출입하는 문에는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만약 노동을 못할만큼 육체가 쇠약해지면 그들은 가차 없이 죽였다. 만약 일터에 쓰러진 동료를 두고 오면 그 조원들 역시 한 평도 채 안되는 밀실에 가둬 굶겨 죽였다. 대부분 얼마를 더 버티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한계였다. 혹시 도망을 생각할지 모르나 삼엄한 감시망에 2중, 3중의 철조망과 전기선이 그들의 수용소 이탈을 막았다. 

 아마 생지옥이란 표현이 딱 맞는 표현이다. 그외에도 열차에서 곧바로 가스실로 끌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늙고 병든 사람, 어린아이, 여자들 중에 허약자 등은 자신들의 짐을 잠시 맡아주겠다는 인솔자의 말만 믿고 목욕실에서 샤워를 하라는 말에 아무런 의심 없이 들어갔다 죽음을 맞았다. 목욕실로 위장된 가스실에서 나체로 죽은 사람들은 바로 옆동에 있는 화장터로 옮겨져 밤낮을 가리지 않고 태웠다고 한다. 2014년 내가 헝가리에 있는 아우슈비츠를 갔을 때 봄비가 내렸고 낮이었는데도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유령이 어느 곳에서 나올듯 한 분위기, 특히나 화장터에 들어갔을 때 기도가 좁아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메스꺼워 입을 막은 채 그곳을 뛰쳐나온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현지 가이드가 했던 말 중에 가슴에 울림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무덤을 보시게 될 겁니다. 여기 히틀러의 만행에 의한 유태인의 주검을 뿌린 재가 동산을 이룬 곳입니다." 하며 화장터 옆에 구릉지를 가리켰다.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넋이 머무는 곳은 그저 어느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는 동산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용소에 꾸며진 많은 공간 중 유태인 여성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 꽃처럼 예쁜 모습이 점차 수용소에서 생활하며 옛모습을 잃고 변해가 죽음에 이를 무렵이 되서는 인간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던 장면에 가슴 한 켠이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었다. 예쁘고 성적인 매력을 지닌 눈과 아름답던 머리결은 어디 가고 움푹 들어간 눈에 머리카락마저 성의 없이 짧게 깎아 중성화된 모습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만큼 뼈만 남아 있는 앙상한 몸에서 아름다움은 어느 순간 증발되어진 채 매력이 실종된 모습만 남은 것에 기가 막혔고,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며 나치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었다. 

  당시 히틀러의 만행을 피해 유럽에 살고 있던 유태계 지식인들이 미국으로 대거 망명했다. 금융계통과 과학분야에 인재들은 미국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원자폭탄 개발로 히틀러와 군국주의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유태인 과학자였다. 유태계 인재의 대거 이동으로 아메리카가 세계의 중심이 된 반면 유럽은 주도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직장을 구하는 것으로 청춘을 잃어가고 있다. 직장에 젊음을 다바친 중년들은 자신의 설자리가 없다는 것에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기업체는 요즘처럼 호기가 없는 듯 보여진다. 밖에서는 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이들이 씩스팩을 쌓고 불러 주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게다가 알파고의 등장으로 가까운 미래에 실전 배치될 싸이보그까지 뒤를 받쳐줄 것으로 예상되니 이만한 호기가 또 있을까?

 직장 내에서는 이런 기업환경에 맞게 용도 폐기된 용병들이 쓰레기 통에 버려지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신입사원 마저도 쓸모 없다 싶으면 명퇴를 시키려 하니 그 조급함은 도를 넘어선 듯 하다. 어느 기업이든 새로운 인재가 미래를 개척해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반면 제역할을 다했다 싶은 중견 사원을 어떻게 버릴까에도 고심하는 것 같다. 명퇴사원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조기에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에게 위로금을 챙겨주고 내보내는 제도다. 사실 원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직장에서 안나가면 못버티도록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시간 체크에서 교육 및 평가, 하루 시간대별 일지 작성 등 어떤 잡스런 것이라도 문제를 삼아 내리찍으려는 간계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런 수모와 치욕을 감당하는 것은 아버지로서 자식의 대학만은 책임지겠다는 부정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백번 지옥 탈출을 꿈꾸지만 현실은 정 반대로 자신이 사직서를 내는 순간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한다. 아파트를 담보로 한 대출금을 더이상 갚지 못해, 살던 아파트를 팔아야 하고 대학 등록금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 해야한다. 대책 없이 나와 직장을 구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결국 하루 아침 백수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마누라가 직장에 다니면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하지만 그것도 길어지면 구박덩어리로 전락하기 쉽다. 이런 복잡한 상황보다 직장에서 미운 오리새끼로 남는 게 훨씬 낫다. 나 하나 바보로 살면 만사가 평안해지니 말이다. 아이들도 아버지의 한숨소리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아버지는 직장생활 잘 하고 계신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근무하던 시흥에 모 자동차 회사는 IMF 직전 외부의 개입으로 기업이 부도가 났고 직원들의 자구책에도 결국 1년 후 최종 부도 처리 되어 동종사에 합병 되었다. 그후 몇 개월 만에 흑자전환이라는 코메디 같은 일이 발생했고 구조조정이란 미명하에 많은 인원이 회사를 떠났다. 당시 인재는 대부분 다른 직장으로 전직을 했다. 그들이 예상했던 인원보다 더 많은 희망퇴직자가 줄을 잇자 인사 담당자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것이 눈에 선하다.

 그후 얼마간 잠잠하더니 최근 인편에 듣자하니 사무실 4층에 희망퇴직(강제퇴직)대상자 중 결정을 내리지 못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감시 아닌  감시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정시 출근, 그리고 자리보전이 전부다. 어떤 업무도 부여되지 않고 남들 퇴근시간에 인터넷 교육과제를 수강하고 독후감까지 작성한 후 퇴근하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한때는 직장의 일꾼으로 인정받던 사람들이 실기를 했던 아니면 주변 동료보다 능력이 저평가되어 고가를 낮게 받았든 개인의 인생을 한 직장에 바쳤는데, 쓰임을 다했다고 버리려하는 기업의 매정함이 부도덕하기 이를 데 없고 또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중 하나는 나가지 않는다고 하던 일을 빼앗고 무료한 상태로 하루를 불안한 가운데 보내도록 하는 야만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징벌해야 할 사유가 충분하면 징계를 내리면 될 것이다. 그러나 정당한 사유가 없는데도 그들에게 업무를 주지 않고 대기상태로 불안한 하루 하루를 보내게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유형의 인권학살이다. 인간의 자존감을 상실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기업의 윤리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기업이 장차 우리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담보해서도 안된다. 마치 히틀러처럼 가스실에 가두고 살인을 자행하는 것만이 학살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는 그와 다를 바가 없다. 정말 우리 사회는 아직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에 미숙하다. 북한의 김씨 일족의 세습정치를 논하기 전 우리나라에서 편법으로 자행되고 있는 재벌기업의 세습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윤리를 잃은 기업에게 우리나라의 미래를  밑겨서는 안될 것이다. 히틀러의 환상이 아니 망령이 되살아 나는 것 같다.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노동시장의 폭력을 목도할 지도 모른다. 정부가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도 판가름 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