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신뢰를 잃어버린 어느 의학도의 무거운 짐

해암 송구호 2016. 4. 7. 11:31


 몇년 전 모 의대에서 대학생들이 MT를 갔는 데 동료 여학생을 성폭행 한후 사진촬영까지 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는 법정구속 되어 옥살이를 하는 중 수능을 공부해 다른 대학 의대에 입학을 했다. 같은 동급생들이 그의 성 범죄 전력을 모르다 최근 그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한다. 이를 테면 "파렴치범(破廉恥犯)과  함께 수업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언론도 이를 주목하고 있다. 현행법상 공부하는 것을 막을 근거는 없다. 그러나 도덕적 결함 혹은 성적인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 자가 의사면허를 갖고 환자를 대한다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를게 없다. 따라서 의사 면허를 주는 문제는 막아야 한다는 것이 중논이다.

  의사와 성은 현재 진행형이다. 범죄자 뿐 아니라 현재 의료 행위를 하는 현직 의사에게도 끊임 없이 논란이 되거나 가십거리로 떠도는 민감한 부분이다. 특히 흰 우유라고 해서 순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할 수 없도록 만드는 약물도 나와 있으니 마음만 달리 먹으면 사람을 희롱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환자를 성의 유희물로 다룬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처럼 배드위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힘 없이 그들의 시선에 자신의 몸이 스켄 되고 만져진다고 상상하면 구역질이 난다.

 얼마전 위, 장 내시경 검사를 하기위해 집 근처 병원에서 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통증을 자각하지 못하는 수면 내시경 검사는 나의 치부를 누군가에게 무의식 상태로 맡겨야 한다는 문제가 있어 내심 찜찜한 경험이 있었다. 이런 작은 문제도 의사나 간호사를 신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목숨을 담보로 한 시술에서 환자는 더욱 의사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전신 마취를 하고 온몸이 드러난 상태에서 생과사를 가르는 칼질을 의사에게 맡기는 것은 자신의 모두를 의사에게 거는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 한일이다. 

 신뢰의 뿌리가 병원의 본질이 되어야 할 마당에 성 범죄자가 머물 공간은 없다. 자신의 과거를 깊히 반성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이미 그는 의사로서 길을 걸어갈 수 없는 낙인(烙印)이 찍혀있는 자다. 만약 그가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고 치더라도 누가 과연 그에게 진료를 받겠는가? 환자가 찾지 않는 병원이 무의미하듯 이미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어버린 자의 미래가 암담할 뿐이다. 죽은자식을 들쳐업고 미련을 못 버리리는 원숭이를 보면서 안타까워 한 적이 있었다. 무슨 생각에 의학공부를 또 시작했는지 모르나 그의 철부지 생각이 앞으로 닥쳐 올 암담한 미래를 상상하게 되어 안타깝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쓴 열매를 기다리지 말고 다른길을 찾기 바란다. 앞으로 쭉 의사가 되는 길엔 넘지 못할 가시밭과 보이지 않는 의혹의 눈길이 당신의 앞길을 막을테니 말이다. 공부만 잘한다고 능사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길 바란다. 

 시지프스의 돌처럼 꼭대기에 도달한 듯하면 다시 아래로 굴러 바닥에 도달하듯 명예를 쌓기전에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길 반복하게 될 미래가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 세상이 주목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낮추고 몸을 깊숙히 감출 때다. 의학을 포기하는 것이 제일 급선무(急先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