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 이야기

삶의 끝자락에 부는 삭풍(朔風)

해암 송구호 2015. 8. 18. 09:13

 누구나 삶이 귀하고 소중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사는동안 제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꿈꾸며 또 현실 세계에 자신을 맞춰가며 산다. 이웃, 가족, 친구, 동료 등 관계가 있든 관계 없든 동일한 공간에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우린 상당한 동일성을 지니고 있다. 시간을 공유하고 또 같은 피부와 눈을 지녔다. 오늘 풀어가려는 이야기는 우리가 태어나 살면서 우리의 본 모습을 잃어가는 것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첫돌을 맞은 아기는 누구보다 엄마가 최고다. 엄마만 있으면 된다. 물론 옆에 늘 아빠란 존재가 함께하기 때문에 아빠도 싫지는 않은가 보다. 아빠의 품에 가끔씩 안기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쯤 되면 옆에 짝꿍과 결혼하겠다며 관심을 보인다. 가족이 아닌 타인을 인식하고 또 혼자 사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특히 엄마 아빠랑 결혼할래 하는 서너살의 순진함이 사라진 세상에 눈을 뜨는 시기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니까 아이는 목소리마져 변하고 부모보다 친구나 오락에 빠져 산다. 가족과 외식 한번 하려 해도 서로 계획이 다르니 다음으로 미루기 일 수다.

  대학을 졸업하고 건장한 청년이 되자 능력에 따른 직장을 찾고 연애와 일에 쫒겨 산다.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를 갖게 되고 그 아이가 성장하면서 부모의 곁에서 독립하려 할 때 쯤이면 부모의 심정을 헤이린다. 그 때는 이미 부모는 이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마음의 고향에 계시다. 그래서 부모님 생각이 날 때마다 먼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곤 한다.  

 사람의 수명은 유한하다. 때문에 자연의 순환고리속에서 계절이 반복되고 되풀이될 때마다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듯 나이란 걸 먹게 된다. 성장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젊은시절이 지나가면 자신의 화려한 시절의 추억이 빛바랜 사진첩에서 기억될 뿐 낙엽 지듯 하나, 둘씩 잊혀져간다. 

아름답던 외모는 점점 수분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쭈글 쭈글 해진다. 그리고 몸은 하나, 둘씩 이상이 생긴다. 삶의 누적된 피로가 병으로 이어져 가는 것이다. 늙어간다는 말만 들어도 서러울텐데 몸에 병이 생기면 서러움은 오죽할까? 

 나이가 들면서 둔해지는 몸은 점점 행동  반경을 줄어들게 한다. 멀리까지 친구를 만나러가던 발길이 가까운 경로당으로 향하게 된다. 경로당에 들어가고 싶어도 돈 없으면 들어갈 수가 없다. 우리동네 경로당은 신입회원에게 입회비 이십 만원을 받는다. 가끔씩 회원 자식이 먹을 것을 사가지고 오게되면 눈치껏 얻어먹은 사람들이 먹걸이를 내는 것이 불문율이다. 장모님과 경로당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 만난  팔십대 후반의 독거노인은  먼 발치에서 경로당을 배회하고 바라볼뿐  돈이 없어 갈 수  없다. 늙어서 돈이 없으면 찾아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고독이다. 

 우리집에 잠시 들린 장모님은 치매를 앓고 게시다. 이 년 전만해도 쇠소리처럼 쨍쨍하던 목소리가 이제는 사그러들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조차 없다. 단단하던 몸은 쇠꼬챙이처럼 바싹 말라서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리고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있으려 한다. 손녀 딸들이 말을 시켜보지만 그저 "응, 아니어"로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한다. 당신의 정신이 온전할 경우엔   "이 몸을 하루속히 하늘나라로 데려가 달라"는 애절한 기도를 한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식사를 하자고 하면 잡은 손을 있는 힘껏 손으로 눌러 저항한다. 사력을 다해 꼬집는 힘이 엄청 세다. 또 하나는 틀이를 끼고 계시는데 틀이를 닦지 않고 잠잘 때 조차도 틀니를 그대로 착용한다. 당신이 잠자는 방과 음식을 먹을 때 필요한 틀니에 집착하는 것은 혹여 자식들에게 버려지지 않을까 걱정에 당신의 잠자리를 지키려하는 것과  틀니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는 생각에서 필요하다 여기는 것은 아닐까? 정신이 온전할 때는 항상 잠자리에 들기전 틀니를 소독하고 빼놓았다. 문제는 틀니 때문에 잇몸이 상해서 인지 음식을 전혀 씹지 못하는 것이다. 국에 밥 한 술 말아 먹는게 고작이다.  이렇듯 무의식 속에서는 삶에 애착을 보이고 제정신이 돌아오면 또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싫망해 빨리 죽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다.  정말 삶의 끝자락이 지리하다 못해 답답한 것이다. 당신 외에도 가족들은 그 고통을 똑같이 짊어져야하 한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니 집안 구석 구석에 지린내가 난다. 거친음식은 먹지 못하고 객출(喀出)하니 함께 식사하다가도 토역질 날 때가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행동은 어머니들이 우리들을 키우며 겪으셨던 일이다. 당신도 밤잠을 설쳐가며 아기가 울때마다 우유에 진자리 마른자리 살펴 주던 그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도 열 자식이 한 어머니를 제대로 못 모시는 것이 현실이다. 아! 우리 모두가 불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