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야 가짜야
요즘 사회 최대 아이콘은 소통(疏通)이다. 어느시대를 막논하고 소통이 되지 않는 국가나 조직은 붕괴되거나 자멸 했다. 소통은 상호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믿음의 바탕에서 신뢰가 싹트고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중국인들의 경우 이를 콴시(關係)라 한다.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친분이 두텁지 않으면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반면 우리는 감정을 너무 쉽게 드러내는 편이다. 감정 변화를 쉽게 드러낸다는 것은 카드 게임에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패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특히 중대한 의사 결정에서 표정관리가 안될경우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보이스 피싱(voice fishing)이란 범죄가 사회 전반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지 오래됐다. 초기에는 농촌에 거주하는 노인들에게 마치 외지에 나가있는 자식인 것처럼 말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돈을 부쳐달라고 하는 바람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보냈다가, 사기를 당한줄 뒤늦게 알고 땅을치며 후회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요즘에는 관공서를 사칭한 보이스 피싱이 유행하고 있는데 주로 경찰, 검찰 등으로 사칭해 범죄에 연루되었다고 하거나 범죄에 노출되었다고 해서 개인 신용정보를 빼내고 그것을 이용 돈을 인출해가는 수법으로 진화했다. 최근엔 관공서를 사칭한 공문을 발송해 편지를 받아본 사람이 전화를 하도록 한다고 한다. 이처럼 범죄의 수법이 점차 지능화되고 있다. 이런 범죄 유형은 모든 사람들에게 불신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낮선 전화가 오면 응대를 기피하거나 아예 무시해 버린다. 소통의 한계를 절감케 하는 대목이다.
택배(宅配)는 물류 운송의 혁명이다. 특히 전자(internet) 상거래를 하면서 택배의 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집집마다 물류를 운반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외부인의 출입이 늘어나면서 택배기사를 가장해 주택을 침입하는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공동주택은 급기야 출입구에 CC-TV설치와 출입문 잠금장치를 설치해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일반 가정도 이러한 사례는 증가하는 추세다. 그리고 택배기사가 노크를 하더라도 문을 열고 받기보다 놓고 가라고 말한 후 택배기사가 돌아간 후에 물건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사람과 접촉은 범죄 노출 빈도수를 높인다는 생각에 사람들과 접촉하는 횟수를 줄이려 한다.
재래시장이나 대형마트 어느 곳을 가든 농,수산품, 공산품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제철에 따라 생산되는 과일, 채소, 생선 등이 먹음직 하다. 정육점에도 부위별로 육류가 전시되어 있어 소비자가 폭 넓게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국산품과 수입품을 정확히 선별하지 못해 피해를 보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가공품도 혼합해서 사용할 경우 쉽게 구분이 어렵다. 결국 소비자는 저질의 물건을 비싼 가격을 주고 구입해야하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감래해야 한다. 일부 상인의 양심마져도 소비자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매번 선거철만 되면 진흑바닥에 넙쭉 업드려 한표를 구걸하다가도 당선되고 나면 국민들의 삶과 차별 된 특권층의 수혜자로 살기 여념이 없다. 설령 국민을 위한 행보처럼 느껴지는 것도 속을 들여다보면 자기 실속을 챙기려는 속셈으로 가득 차있다. 정치인의 입속은 온통 시커멓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는 사회가 되었다. 정치인들의 선거비용은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본전에 얹어서 차기 대선비용까지 뽑아야하니 돈 나올 구멍이 있으면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또 공천을 받지 못하면 최고의 특권을 누리는 것도 끝나니 자신의 생각과 상관없이 당논을 쫒는 거수기가 되곤 한다. 국민이 두렵지 않은 정치인들의 행태에 대하여 온 국민이 염증을 넘어 증오하고 있다.
불신의 뿌리는 사회를 어둡게 만든다. 어느 한구석 내마음 편한 곳이 없다. 딸아이를 갖은 부모는 선생님도 못믿는다. 어두운 밤길에서 술취한 여대생을 끌고가 성폭행 하려다 극렬하게 반항하자 죽이고 자살한 아버지 또래의 아저씨도 못믿는다. 직장에서도 위계에 의한 성폭력과 성폭행을 보면서 직장도 못 믿는다.
우리 사회는 지금 불신 덩어리로 똘똘 뭉쳐있다. 모든 사람이 경계 대상이고 나를 위해(危害)하려는 자들로 보인다. 스스로 이런 생각에 깊히 빠져들게 되면 대인 기피증이 생겨날 수 있다. 혹시 전화벨 소리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오늘도 비정상적인 뉴스로 꽉차있는 기사를 읽으면서 또한번 불신의 장벽에 벽돌 하나를 얹어 놓는 것은 아닌지. 어디서부터 신뢰의 틀을 짜 나아가야 할지 막연하다. 그래도 우리는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