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은
요즘 세상은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행복한 삶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을 볼모로 잡고 인질극을 벌이거나 집안에 남편과 내연남의 시신을 유기한 채 몇 년을 사는 사람,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가족이 동반자살을 하거나 치매노부부가 병간호에 지쳐 동반자살을 한 경우, 또 지체장애 1급의 언니를 수발하다 고달픈 삶을 더 이상 주체하지 못해 삶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 사회 한편에서는 무너져가는 성윤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교수, 군 간부, 국회의원, 검찰 등 사회적으로 지도층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위계(位階)에 의한 성추행을 벌여 비난을 받고 있다.
또 하나 사회 이슈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재벌 3세의 횡포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유명한 00항공사의 부사장이 기내에서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향하던 중 비행기를 되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한 후 출발한 사건이다. 그리고 우리 기억 속에 잊혀져가는 사건이 또 하나 있었다. “내가 누군 줄 알아!” 모 국회의원이 대리 운전기사를 두고 한말이다. 최근에는 청와대 행정관들이 위세 아닌 위세를 부리며 다닌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없는 사람들은 없어 죽고, 있는 사람은 가진 것을 남들이 못 알아봐줘 죽는다. 그래서 그들은 소리치고 있다. “내가 누군 줄 알아?”
한편에서는 어려움 속에서도 진정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17년 전 아내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됐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내 곁을 지켜온 남편의 정성 때문에 기적처럼 의식을 되찾았다. 그러나 긴 병수발 중에 남편은 위암에 걸렸다. 아내 앞에서는 웃다가도 진통이 오면 화장실로 뛰어가 홀로 통증을 삭인 후 돌아와 태연하게 아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짠했었다.
모두가 이세상의 주인으로 왔는데 살아내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힘들어 삶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 돈과 권력의 맛에 길들여져 호가호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주어진 삶의 무게를 감내하며 따듯한 온기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해가 뜨는 곳에는 음지도 있고 양지도 있게 마련이다. 그 곳에서 제 각각 처지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다.
근자에 국무총리 청문회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도덕성은 대부분은 함량 미달의 경우가 많다. 아마 그들의 삶이 공익보다 사익(私益)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될 사람은 독일처럼 구별된 삶을 살도록 키워가는 것은 어떨까?
추악한 삶이 드러난 정치인의 명(命)을 누가 신뢰하고 따르겠는가? 국민 앞에 나설 재목이 못되면 스스로 그 자리를 사양하는 것이 미덕이다. 국민에게 청량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이 바로 우리 삶의 비타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