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종로에 가면 광장시장을 찾으시라!

해암 송구호 2014. 8. 28. 08:57

만나면 입고리가 절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짓게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에게선 호감을 후자에게 선  불신이나 서운함이 있었기에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것이다.

누군가 술한잔 하면서 깔깔거리고 흩트러진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보여줄 수 있다면, 아니 그런 친구 모습을 자연스레 대할 수 있다면 친구 맞다. 생뚱한 소릴해도 그를 타박하지 않고 바라보는 진지한 모습에서 삶의 해방구(解放區)를 찾는다. 성의 깔이 다르다고 별반 差는 없다. 이무럽게 만나 대화하면서 세상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함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요즘 난 광장시장을 자주 찿는다. 시장안은 늘 먹거리로 풍성하다. 그중 비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집이 있다. 순이네 녹두빈대 떡집이다. 기름에 튀겨진 노릇노릇한 빈대떡을 떼어 물면 아삭한 식감이 귀를 울리고, 녹두의고소함이 혀 밑 침샘을 자극한다. 그리고 두툼한 빈대떡 한장이면 위가 만족해하니 그만이다. 가격도 삼천원으로 저렴해 막걸리 두병에 빈대떡 한장이면 천하가 발아래 무릎 꿇는다. 순이네는 유독 여타 음식점보다 손님이 많다. 문전성시(門前成市)다. 주인이 친절하지도 않고 카드도 아닌 현찰 박치기인데 평일에도 기본 30분은 기다려야 한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쓰러질 판이다. 사람 심리가 묘한 것이  줄서는 수고로움에도 손님없는 한가로운 집보다 바글바글하고 비좁아 옹색한 소문난 맛집을 찾는다. 외국인에게 알려졌는지 국적다른 이방인들도 섞여있다. 막걸리는 서울막걸리를 고집한다. 그 맛을 느낀 자들은 그 것만 고집한다. 속칭 마니아(mania)다. 이 골목에 전등은 30촉 백열등이다. 비오는날 잔잔한 바람이 불면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붉으스레한 백열등은 따듯함이 베어난다. 반면 형광등은 웬지 차겁단 느낌이 든다.

 술기운이 조금 오르고 어슴프레하게 백열등이 반짝거리면 바로 이 곳이 천국이다. 옆에서 깔깔대는 소리는 아름다운 음악이되고 술기운을 못이겨 꾸뻑거리는 눈섭은 짝짝이가 된다.

 처음 순이네를 찾은 것은 몽이가 소개해서다. 친구 결혼식장에 들렸다 뒤풀이를 한 곳이랬다. 톡에 남긴 글에 취흥과 즐거웠던 분위기가 묻어있어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가까운 산을 찾는다. 그중 가깝기도 하려니와 산이 능력에 따라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북한산을 자주 간다. 북한산은 암릉이 많아도 산행하기 수월한 편이다. 그래서 악(嶽)산이란 오명도 붙지 않았다. 주로 연신내를 들머리 삼아 비봉에서 백운대로 가든가 짧게 이북오도청 방향의 구기터널 입구로 하산한다. 백운대까지 산행을 길게할 경우 날머리는 북한산성이다. 최근 북한산 공원이 정비사업을 하면서 산성주변에 산재해 있던 음식점을 공원입구로 이전시킨터라 깨끗하고 정갈한 음식점이 많다. 예전엔 하산길에 산중턱에 허름한 음식점에서 목을 축이곤 했는데 이젠 산을 다 내려와야 갈증을 해소할 수있다. 구기터널 쪽으로 하산하면 오래된 순두부집이 있다. 30년전부터 하산길에 들렀던 집으로 두부전에 막걸리 한 주전자는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할머니는 두부장인이라서 맛갈스런 두부를 내놓았지만 요즘은 예전 그맛을 느낄 수없어 안타갑다. 아마 할머니가 돌아가셨나보다.

 광장시장을 알게된 이후 날머리는 구기터널이다. 구기터널에서 차를 타고 광장시장에가면 먹거리가 풍부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기 때문인데 한편으론 친구와 헤어지는데도 미안한 마음이 덜하기 때문이다.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온 친구를 배웅한다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다.

 우리집과 거리가 엇비슷해 보낼 때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비오는 날 광장시장으로 오시라! 빈대떡 신사처럼 빈지갑들고 오지말고 두둑히 채워오시라! 겨울 찬바람에도 오시라! 육회 골목에서 장갑낀손 입에 모두고 골바람을 맞아 보시라! 연인이 있으면 연인과 함께하고 친구가 있으면 친구와 함께 하시라! 추억이 생겨나고 지난 추억을 돼새길 수 있으니,광장은 벌판이고 그대마음은 창해처럼 넓고 깊으리라. 종로 에 가면 광장시장을 찾으시라. 201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