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 송시열
출생 : 1607년11월12일(선조 40년) 충남 옥천군 이원면 구룡촌(외가)
태몽 : 부친 송갑조 / 공자가 그의 제자와 구룡촌에 찾아옴
본관 : 은진(恩津)
고려 중기 판원사(樞密院-궁중의 숙위 및 군기를 맏아보던 직의 으뜸) 송대원을 시조로
삼음 종 증조 송인수 대사헌
조부 송응기 도사
부 송갑조 봉사
교육 : 사부 - 부친인 송 갑조(세뇌교육)
격몽요결(이이)
사화에 관련된 서적 : 기묘록(김정국 / 조광조 사사)
해동야언(許篈)
성격 : 외고집, 편중된 교육 영향
학문적 계보(정치적 계보) : 서인 / 율곡 이이
우계 성혼
구봉(龜峰) 송익필 → 김장생(沙溪) → 송시열(우암)
(인생유전) (예학의 시조)
송익필의 인생유전
본처 ↔ 안돈후 → 노비
↓ ↓
안당(중종/ 우의정) 서녀 안감점 ↔ 송린(백천갑사)
| ↓
| 송사련(서얼로 당상관인 첨지 중추부사 / 안처겸, 처근 형제가
남곤, 심정 제거음모 고변 - 1521년 신사무옥 발생)
안처겸, 안처근 ↓
송익필
송사련 고변 → 노론세력(훈구파)에게 사림 제거 빌미 제공(1521년 /중종15)
송사련은 공을 인정받아 첨지 중추부사를 제수받음)
안당의 신원(명종 21년/ 1566년) / 송익필(32세)
안당의 증손 안요(安瑤)의 처 윤씨 상소 / 송익필 52세
송익필 조부가 노비 였으므로 환천 시키려 함.
송익필 서인(정철 등 )도움받아 할아버지 고향 황해도 배천에 내려감
☞ 정여립이 세를 모으는 것 보고 황해 관찰사 한준 통해 역모 고변.
이발이 송익필을 잡아 환천 시키려한 점에 대한 원한 포함.
역모 고변자 살해 계획 : 동인 이산해, 정언신(정여립과 인척)
서인 대사헌(홍성민) 저지 실패 ← 선조가 동인의 행동을 덮으려 함.
정여립 → 죽도로 도망 후 자결
위관의 교체 : 정언신에서 정철 / 기축옥사(1589년 10월/선조22년)
동인의 피해 - 2년간 1천명
최명길 : 봉림대군의 스승으로 송시열 추천
기축봉사 : 1) 춘추 대일통(중국 주나라를 따르고 그외는 오랑케)
2) 주자 칭송
3) 3강(三綱): 주와 군신의 의리를 지키는 것
서인의 붕당 < 한당 ; 김육, 조익, 산당 ; 김집, 송시열>
대동법 반대 : 우암 송시열(사대부 입장 대변)
정유봉사(丁酉封事) 19항목 1) 북벌보다 백성을 기르고, 사대부를 우대하는 왕도를 기르라.
2) 북벌은 사대부 지지 여부 성패 달려
3) 왕실 사치의 부당함
4) 덕업을 쌓을 것
5) 음식을 쌓을 것
출사 거부로 주목받는 송시열
효종이 부른 연유?
- 사대부 지지 없이 북벌 불가능 인지
- 송시열 예조 참판 명 - 효종 9년 3월
- 이조판서 : 송시열(조정 실권 넘김)/ 효종9년 9월, 병조판서 - 효종10년 3월
- 대사헌 : 송준길(탄핵권)
기해 독대 : 효종 10년 3월11일(송시열과 대화)
송시열을 역적으로 몬 윤선도
악연
- 기축옥사 : 정여립의 난 때 이발의 죽음(이발은 윤선도 조부 尹毅中의 사위(壻)
- 세자의 같은 師父로 관직에 출사 과정에서 우암이 앞길을 막았다고 오해.
- 예송논쟁의 시각 차 : 종통(효종), 적통(소현세자)에 관해 중국 고사에서 비교
이력(효종), 태백(소현)이라면 어떻게 헌종이 왕이 될 수 있겠는가?
- 서인의 강한 반발 : 윤선도 죄물어 죽이자 난리
- 우윤 권시의 만류 : 송시열 (2자 惟) & 윤선도(윤증 - 맏사위)는 사돈
윤휴의 맏아들 윤의제가 2째사위
유배
체이부정을 통한 왕통 거론 윤선도 삼수로 귀양(현종)
攻擊 ; 송시열, 이유태, 유계(부제학)
擁護 ; 정태화(영상), 심지원(좌상), 조익수(대사헌)
예송논쟁
제 1차 예송논쟁 : 효종사망(1659년)시 계모 자의대비 복상 건
기해년 발생했다 하여 기해예송 또는 기해복제라 함.
예송논쟁 목적 : 헤게모니 싸움(주권당의 기득권 지킴)
상복(5종) : 참최 : 3년 / 아버지 상, 부가 돌아간 상태 할아버지 상, 장자상에 부모
재최 : 1년 / 서자상에 부모
대공 : 9개월
소공 : 5개월
시마 : 3개월
☞ 논점 : 효종이 장자(적통)냐 서자(종통)냐 놓고 논쟁
우암의 견해 : 서인은 가통으로 차자에 해당, 계모인 자의대비는 재최(1년)에 해당.
백호의 견해 : 의례(참최장)에 제1 장자가 죽으면 제2 장자를 세워 또한 장자라 한다.
따라서 3년상이 옳다.
우암의 논박 : 의례(참최장) 주석에서 서자는 장자가 될 수 없으며 본부인 2자 이후는
다 서자로 한다.< 종통의 당위성 언급>
4종 지설(四種之說) : 체이부정(봉림대군 = 효종)
정이부체(소현세자 = 死)
정태화 : 예송논쟁은 후 정치적 뇌관작용 예언
부모와 자식관계에서 군신관계 여부
- 우암 : 자가 모를 신하로 둔 예가 없음(성리학)
- 윤휴 : 주나라 때 무왕이 부모를 신하로 둔 예가 있다.
예송논쟁 처리 : 서인(집권당)은 1년(재최) 강행.
남인의 반발 / 1년 후인 경자년(1660) 묵제 허적(1610 ~ 1680/ 사헌부 정4품,
장령)이 "의례주소(儀禮註疏)에서 적처 소생의 제 2장자
도 역시 장자요 정체이니 3년복이 정당함 주장.
현종 의 내심 : 3년상(왕통의 정당성)
남인 의 속내 : 야당에서 여당으로 전환 기회 삼음(학문쟁점 → 정쟁 MODE화)
제2차 예송논쟁(갑인 예송)
인조왕후(효종의 비)사망 에 대한 계모 慈懿大妃의 상복건
- 예조 : 예조판서 조연(趙衍) - 기년복(朞年服/1년)보고
- 김수항 형제 : 복제가 효종과 동일할 수 없다며 대공복(9개월) 주장
- 송시열 : 낙향
- 남인 : 대구유생 도신징의 疏 / 국제에서 아들 며느리가 朞服을 하도록 되어있는데
9개월인 대공복을 취하려 함은 효종을 서자로 강등키 위한 서인의 술책
현종의 질문 : 기해년(효종 상)에는 국제를, 갑인년(仁宣王后)에는 고례를 적용한 이유는?
- 윤휴 ; 서인들이 왕실을 우습게 여긴다.
- 김석주 ;현종의 장인, 김우명의 조카
현종은 당파보다 외척으로 왕실 입장의 해석 기대.
- 허목(청남)과 가까운 김우명<남인계>
- 허적(탁남)과 가까운 김석주<서인계>
김석주와 송시열의 구원(舊怨)
- 김육의 손자로 대동법을 놓고 싸움
- 김석주 부친이 조부 묘에 수도(隧道) 설치한 것 놓고 송시열이 공격<왕이나 가능한 것>
김석주의 대답 : 1) 우암의 체이부정(體而不正)
2) 허목과 윤휴의 반대
3) 의례주소에 둘째로 후사를 이으면 장자라 한다.
4) 김수홍 : 왕실 능멸한 죄
예종의 비답
- 기해예송 : 참최(3년복)
- 갑인예송 : 재최(기년복 /1년)
- 영상 김수항 귀양(현종 15년/1674년7월16일)
결과
- 남인 시대 (만년 야당에서 벗어남)
- 현종의 돌연사.